후세인·카스트로 같은 독재자도 美 언론 통해 자신의 생각 밝혀
北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있다면 국제사회 앞에서 공개 약속해야
 

임민혁 논설위원
임민혁 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북 특사단에 '답답함'을 토로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더 답답함을 느꼈다.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를 여러 차례 천명했는데 국제사회가 몰라준다"고 했다는데, 정말 그런 의지가 있다면 왜 공개 석상에서 직접 자신의 비핵화 구상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는 걸까.

"트럼프 첫 임기 내 비핵화" 등의 말이 김정은의 육성(肉聲)으로 나왔다면 훨씬 파급 효과가 컸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일단 대화에 좀 더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은 확산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말들은 특사단이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흘리듯이 전해졌을 뿐이다. 그러니 김정은의 의지가 얼마만큼 실려 있는 언급인지, 조건들이 줄줄이 붙어 있던 것은 아닌지, 또 시간 끌기 작전을 하는 건 아닌지 의혹이 꼬리를 문다. 매번 이렇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문에 들어가 있는 '완전한 비핵화'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까지 모호하다.

특사단에 따르면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하다. 선의(善意)를 선의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불평을 하기 전에 인색한 평가가 주로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집단에서 나오고 있는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 북한을 사찰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던 북핵 협상가들이 그렇다. IAEA는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했다는 징후가 없다"고 했다. 크리스 힐, 로버트 갈루치 등 과거 대북 대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싱가포르 회담 후에도 북한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과거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는 것을 경험해봤다. 그리고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한·미가 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임을 여러 차례 '뒤통수'를 맞아가며 체감했다. 이들에게 '선의를 믿어 달라'는 김정은의 말은 "한 번 더 속아달라"는 말과 다름없다.

김정은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귀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북이 가장 바라는 체제 보장, 경제 지원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통령뿐 아니라 의회와 여론의 광범위한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진정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면 공개 연설이나 기자회견·인터뷰를 통해 회의론자들도 직접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국제사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다.

당장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무대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의지만 있다면 정상회담 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큰 틀에서의 비핵화 구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비핵화가 한·미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지, 그런 비핵화를 2년 안에 할 의지가 확고한지 등을 전 세계는 궁금해한다. 핵신고서 제출 같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계획도 그의 입을 통해 듣고 싶다. 언론 인터뷰도 효과적인 수단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 지도자가 인터뷰를 한 전례가 없다지만 그동안 김정은이 보여온 파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과거 이라크 후세인, 쿠바 카스트로 등 미국과 싸우던 독재자들도 미국 언론을 불러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밝히곤 했다.

문 대통령 등 우리 정부 인사들은 김정은이 "솔직하고 담백하고 침착하고 대담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런 인물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김정은이 뒤로 숨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이번에도 '핵 사기'에 놀아나고 있다"는 심증을 굳힐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7/20180917032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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