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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아버지가 남긴 未完의 자서전, 한 편의 소설이 되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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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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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 엇갈린 가족의 운명 탓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 아버지… 23쪽에서 멈춘 자서전 남겨
16세에 아버지의 유품 본 작가, 이산가족 悲劇 그린 소설 완성… 이들의 恨 달래줄 방안 고민을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 소설가

슬픈 영화나 드라마에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런데 매번 눈물이 나는 인생 다큐 드라마가 있다. 매회 무대의 주인공들은 갈수록 고령(高齡)이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가슴 저미는 이벤트. 지난 8월 말에 금강산에서 두 차례 열린 21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야기다.

평생의 기다림 끝에 70년 만에 상봉하는 사람들. 헤어질 때 네 살배기였던 아들을 단박에 알아보고 달려가 얼굴을 쓰다듬고 끌어안는 구순(九旬)의 어머니. 자신보다 일찍 죽은 아들 대신 며느리와 손녀를 만난 101세의 아버지. 생이별한 아내의 배 속에 있던 67세 딸을 생전 처음 만난 89세의 아버지. 70대 할머니들이 된 북의 두 딸을 만난 99세의 어머니. 형제나 남매들도 대부분 80 노인이다.

내 눈에는 자식이나 부모나 그저 다 노인이다. 딴에는 성장(盛裝)했으나 이가 빠지고 주름지고 꺼칠한 피부의 곤고한 얼굴. 노동으로 닳아빠진 손톱과 거칠고 늙은 손. 대체로 북쪽 사람들이 더 늙어보인다. 아비와 어미에게는 어린아이였던 자식들이 자신과 별다르지 않은 노인의 모습이 되어 있는, 이 기막힌 슬픔이 오죽할까.

꿈 같은 만남도 잠시, '안녕히 다시 만나요'라는 북의 노래 속에서 작별의 애끓는 눈물과 손짓. '오래 살아 꼭 다시 만나자'는 이미 오래 산 노인들의 기약 없는 약속. 늙은 부모는 안다. 이게 마지막 만남과 이별이란 것을. 그래도 선발된 그들은 569대1의 경쟁을 뚫었으니 운(運)이 좋은 사람들이다.

간절하게 북의 아내와 자식을 평생 그리워했으나 생사도 모른 채 일찍 눈을 감은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라면 어떻겠는가. 이산가족의 내밀한 아픔을 그린 김이정의 자전적 소설 '유령의 시간'은 그런 아버지의 인생에 바치는 오마주(hommage·프랑스어로 존경·경의라는 뜻)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사회주의자로 수배된 이섭은 자기 대신 갓난아기를 데리고 감옥에 갇힌 아내와 두 아들을 형에게 맡기고 쫓기고 있다.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한국전쟁 중 신념을 좇아 월북한 그는 북한의 현실을 보고는 가족을 데려와 희생할 만한 체제가 아님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가족이 있는 남한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사이에 사회주의운동을 하던 형님 가족은 이섭의 두 아들을 데리고 월북하여 길이 엇갈려버린다.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재혼해서 사남매를 낳았지만 그리움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섭은 전 부인을 호적에서 지우지 못하고 자식을 전 부인의 호적에 올린다.

'이제 서른,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 되었을 아이들. 서해 바닷가에서 이섭은 얼마나 그 아이들을 기다렸던가. 눈동자 검은 아이들아, 이 아비에게 오너라. 부디 고무보트를 타고서라도 오너라. 이섭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매일 새벽 해안가까지 뛰어가곤 했다.'

서해 바다에서 생업으로 새우 양식을 하는 이섭이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치면 북의 아들들이 간첩으로라도 넘어와 주길 기다릴까.

광복 30주년을 맞은 1975년 8월 15일 이섭은 사회안전법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회한 어린 일생을 기록하기 시작하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한 달 후 돌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첫 아내와 두 아들의 생존 여부조차 모르고 죽었다. 세월이 흐른 후 그의 딸 지형은 아버지의 헤어진 부인과 두 아들이 북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75년에 멈추어버린 아버지의 미완(未完)의 자서전을 완성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유품인 23쪽에서 멈춘 자서전을 본 열여섯 살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 운명을 감지했다고 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과 북으로 찢어진 자신의 가족에게 죄책감에 시달리며 삶을 저당 잡힌 채 살았다.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유령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땅 어디서도 존재하 지 못했던 유령."

우리 측 방문단 87%가 80대 이상이라 한다. 간절하고 절박한 1세대 고령층이 매년 4000명 이상 한(恨)을 품고 운명한다. 죽음에 순서가 없으니 2세대인 70대 이상 자식들도 오래 기다릴 수가 없다. 이제 시간이 없다. 유령의 시간을 몰아내고 사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핏줄의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만이라도 확대되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2/20180912039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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