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북은 포괄적인 것만 약속하는데 우리는 구체적인 것 주려해"

‘정의용 특사단’의 6일 방북 결과 발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재확인과 ‘3차 남북 정상회담 18일 개최’로 요약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런 방문 결과를 설명하면서 김정은의 여러 발언을 전했다.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해체의 의미를 미국 측이 폄하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는 대목과 "종전선언과 주한 미군 철수는 상관없다"는 등의 얘기다. 정 실장은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함을 확인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번 특사단의 방북으로 김정은의 의중이 예전과 다름없음이 오히려 확인됐다는 점이다. 미국과 북한은 최근 비핵화 협상을 두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는데 양측의 비핵화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 신고 목록을 내놔야 하고, 그게 비핵화 초기 단계"라고 했지만, 북한은 특사단을 통해 "풍계리 폐쇄 등을 통해 이미 비핵화 초기 단계의 성의를 보였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북의 성과는 미북 간 명확한 입장 차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6일 청와대에서 전날 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北 기존 입장만 확인"비핵화 시한 언급은 처음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며 "풍계리·동창리를 언급하며 비핵화 의지를 믿어달라고 한 김정은의 말을 특사단이 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평양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했다. 남 교수는 "결국 이번 특사는 남북 정상회담 날짜를 잡으러 간 것"이라며 "특사는 이제 남북 관계용이며, 비핵화에 일보를 내딛는 데 기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도 "북한의 기존 입장과 달라진 점이 없다"며 "핵실험장 폐기나 유해 송환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왜 거기에 상응하는 종전선언을 하지 않느냐는 얘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북한이 문제를 푸는 공식은 미국과 다름을 확인만 한 셈"이라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핵화를 위해서는 신고·검증·폐기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북한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살라미 전술’을 펴고 있다"고 했다.

다만 김정은이 처음으로 비핵화 시한을 ‘트럼프 정부 임기 내’라고 얘기한 점은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는데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한 것 같다"며 "비핵화 시한을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로 명시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北, 종전선언 정말로 ‘선언적’으로만 보나?

북한과 특사단의 종전선언 관련 인식도 논란이다. 정 실장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한 필요한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북한도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유환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니까 종전선언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비핵화와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측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발언"이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5일 북한 평양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제공

하지만 북한이 종전선언을 ‘단순 선언’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반론도 많았다. 남성욱 교수는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미국이 북한을 제재·압박할 명분이 사라진다"며 "종전선언으로 한미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건 피상적인 논리이며, 종전선언이 먼저 이뤄지면 비핵화는 일보는커녕 반보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 말대로 종전선언으로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유엔군사령부는 직접 관련되지 않는 것이어서 북한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연락사무소 문제로 한미 관계 갈등 불씨

남북 정상회담 이전 개성 연락사무소 설치 선언은 한미 관계 갈등의 불씨가 될 여지가 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에서 여러 번 반대 시그널을 줬지만, 연락사무소 개소를 강행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은 포괄적인 것을 약속하는데 우리는 연락사무소 설치 등 구체적인 것을 자꾸 주고 있다"며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했다.

다만, 김성한 원장은 "이렇게 발표할 정도면 미국이 ‘그렇게 원한다면 하라’고 한 것일 수 있다"며 "연락사무소 설치를 역이용해서 종전선언 대신 미북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비핵화 조치를 받아내는 것을 미국이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6/201809060211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