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의해 거래가 전면 금지된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반입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남동발전은 현재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무연탄을 작년 11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총 9700t 들여온 혐의로 관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해당 의혹은 지난달 17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를 인용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보고서는 파나마 국적의 스카이엔젤호와 시에라리온 국적의 리치글로리호가 작년 10월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북한산 석탄 9000여t을 선적해 국내에 입항했고 이를 러시아산으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북한 원산항·청진항에서 석탄을 싣고 온 북한 선박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 북한산 석탄을 내렸고, 이 석탄들이 스카이엔젤호 등에 실려 러시아산으로 국적을 탈바꿈해 인천항·포항항 등으로 국내에 반입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북한산 석탄 운반과 관계됐다는 의혹을 받는 의심 선박은 계속 늘어나 샤이닝리치·진룽·안취안저우66호 등 총 8척이 지목되고 있다.

관련 의혹 조사가 10개월째 이어지면서 몇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① 정부·남동발전은 해당 석탄이 북한산으로 의심받는 석탄인지 정말 인지하지 못했느냐 ②관계 선박 및 석탄에 대해 조사·조치가 왜 이렇게 지연되느냐 등이다.
 

①북한산 의심 석탄인지 정말 몰랐나
가장 큰 의문점은 당국이 해당 석탄이 북한산이라는 의혹을 받는 석탄인지 정말 몰랐느냐는 점이다. 정부는 “북한산임을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하고 있다.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의혹은 이미 작년 10월부터 제기됐다. 우리 정부는 스카이엔젤호 등의 입항 직후 이 석탄이 북한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부터 8월 현재까지 북한산 석탄으로 추정되는 화물을 실은 선박들은 국내에서 자유롭게 입출항했고, 남동발전은 해당 석탄 9700t을 87만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관세당국은 관계 선박들이 들여온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확인됐다며 입출항을 허가했다. 선박에 실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확인한 근거는 관련 서류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산 추정 석탄을 국내로 반입해 관세청 조사를 받고 있는 선박 진룽호의 7일 출항에 대해 “진룽호는 이번에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다”며 “관련 도큐먼트(서류)를 통해서 1차 확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류만으로 석탄의 원산지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안북도의 한 무역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본격화해 석탄 수출 길이 막히자 조선무역회사들이 러시아 연해주 남쪽 끝에 있는 나홋카항과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석탄을 보낸 다음 러시아산으로 서류를 위장해 다른 나라들에 수출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동발전도 “석탄 수입 당시 무역중개업체인 H사가 러시아 정부가 발행한 원산지 증명서를 관세청에 제출해 정상적으로 통관이 됐다”며 해당 석탄을 러시아산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히고 있다. 남동발전은 공개입찰을 통해서 최저가를 제시한 H사를 통해 석탄을 수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확인하지 않고 중개업체만 믿고 ‘깜깜이’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H사가 납품하기로 한 석탄의 원산지는 서류상 러시아 내륙의 젠꼽스까야 광산인데, 선적항을 사할린 홀름스크항으로 한 점도 의아한 부분이다. 또 남동발전은 관세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해당 석탄의 반입을 중지하지 않고 아무 조치 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구매 입찰 공고에 ‘북한산 석탄은 입찰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며 “남동발전의 자체 성분분석 결과 러시아산 무연탄과 큰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석탄 전문가들은 무연탄의 경우 국제적으로 거래가 별로 없고, 광산별로 성상(性狀)이 뚜렷해 원산지를 구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 자원무역상은 “남동발전의 전문가들이 석탄의 성상만 보면 원산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며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알고 수입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신항 제7부두에 북한산 석탄을 실어 날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진룽(Jin Long)호가 정박한 가운데 인부들이 석탄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②조사는 왜 이리 지연되나
유엔 안보리는 작년 8월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대북 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고, 같은 해 12월 금수 품목 이전에 연관된 선박을 나포·검색·동결(억류)하도록 하는 결의 2397호를 추가로 채택했다. 그런데 북한산 석탄을 싣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제3국 선박들은 대북 제재 결의 이후에도 자유롭게 국내 항구에서 입출항했다.

우리 정부 기록에 따르면 작년 12월말부터 리치글로리호는 16회, 스카이엔젤호는 8회 국내에 입항했다. 또 국내에 석탄을 들여온 시점 이후 샤이닝리치호는 11회, 진룽호는 19회, 안취안저우66호는 14회 입항했다. 북한 남포항에서 석탄을 싣고 베트남·러시아 항구 등에서 석탄을 환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카이샹호와 스카이레이디호도 각각 8회, 11회 국내에 입항했다.

일각에서는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제재 위반 사실을 명시한 선박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산 석탄 반입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의심 선박들을 그대로 돌려보낸 이유에 대해 정부는 “작년 10월에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제재 위반에 관여한 선박을 억류하는 조항이 없었고 혐의도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제재가 아니더라도 5·24조치 등 국내법에 따라서도 북한산 석탄은 들여올 수 없다. 또 작년 말 이후 들어온 선박들에 대해서 조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선박을 억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이 없어 출항을 허가했다”며 “해당 선박들이 모두 제3국 국적인데, 나포·수색 등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지난 7일 포항항에서 출항한 진룽호에 대해 외교부는 “진룽호는 이번에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범정부 대책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점의 의아한 측면이다. 정부 당국자는 “그간 외교부가 연락책이 돼 관세청·통일부·해양수산부 등에 필요한 부분을 알리고 국가안보실에 내용을 보고해왔다. 범정부 대책회의는 한 적 없지만 앞으로 개최할지 여부는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개월간 대응 체제를 갖추지 않은 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 남동발전은 "작년 11월부터 관세청 조사를 받았지만 '북한산으로 의심된다'는 얘기는 전혀 해주지 않아 무슨 혐의인지 몰랐다"며 "북한과 관련된 조사인 줄 알았으면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관세청이 관련 의혹에 대해 10개월째 조사를 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 결과 발표가 나오지 않는 점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관세청 측은 남동발전과 H사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인데, 관련자들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조사가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8/20180808015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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