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 미수복경기도 개풍군민회 사무국장
이혁진 미수복경기도 개풍군민회 사무국장

오는 20일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100명씩 만난다. 지난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른 조치다. 2015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상봉을 앞두고 대다수 이산가족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무르익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이산가족 문제는 별다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남북 각각 100명씩 제한되었다는 소식에 이산가족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생존해 있는 5만7000여 명의 이산가족이 매달 만난다 하더라도 50년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산가족 생존자의 85% 이상이 70세 이상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기약 없이 기다릴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개성공단 인근 개풍군이 고향인 필자의 아버지(90)도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후 매번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모와 다섯 동생들을 두고 피란했다. 아버지는 "이제 상봉을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대다수의 이산가족에게 상봉은 '희망 고문'일 뿐"이라고 했다. 고향 개성에 두고 온 여동생을 만나려는 김영헌(91)씨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다.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지금까지 20차례에 걸쳐 2000여 명의 이산가족이 헤어진 혈육을 만났지만 재상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상봉 이후 서신 왕래도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남북 상황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기획돼 변죽만 올린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 해결을 외면한 일회성 이벤트는 차라리 거부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가 탈락하는 과정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찔끔찔끔 만나려면 차라리 기대를 접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이북도민 사회는 전면적 생사 확인, 정례 상봉, 서신 연락, 고향 성묘 방문 등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가 정치적 이슈에 휘둘리는 한 실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최근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국제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남북한에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고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누릴 수 있는 기본 인권이 북한 당국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2008년부터 유엔 등 국제사회에 남북 이산가족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1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인권 기구를 대상으로 이산가족의 인권침해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산가족 문제는 중대한 기본권 침해라는 차원에서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국제 인권법에는 가족이 함께 살 권리인 가족결합권을 비롯해 가족의 소식을 알고 만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그동안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은 북한의 시혜적 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접근 방식을 획기 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 기구 및 국가 간 연대를 통해 제기하면 강제성을 수반하게 된다. 인권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북한에 책임 소재를 묻고 압박을 가해 문제 해결을 촉구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 7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이산가족 문제는 인륜과 천륜에 기반한 인권 차원에서 글로벌 이슈로 다루어야 근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2/2018080203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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