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욕한 '백년전쟁', '親日' 덧씌워 정통성 짓밟아
엉터리 史觀에 물든 文 정부 '대한민국 70년' 홀대
 

김기철 논설위원
김기철 논설위원

'백년 전쟁'은 성공했다.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이 동영상은 이승만을 '친일파' '하와이 깡패'로, 박정희를 '스네이크 박' '미국의 하수인'으로 조롱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젊은 여자와 불륜이나 저지른 불한당이었고, 박정희의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은 미국 구상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백년 전쟁'은 한국 현대사 100년을 친일·협력 세력과 독립·저항 세력의 전쟁이라는 이분법으로 몰아갔다. '친일 세력'이 세우고 만든 대한민국이니 정통성이란 게 있을 리 없다. "북한은 친일파를 철저히 숙청했지만 남한은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며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쓴 거짓 신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역사적 근거도 떨어지고 논리도 조악한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수백만 명이 봤다. 당시 원로 학자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우려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했고,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유영익 교수는 "현대사 연구를 게을리한 역사학계에 책임이 있다"며 탄식했다. '백년 전쟁'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파동, 국정교과서 파동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백년 전쟁 사관(史觀)'은 더욱 뿌리 깊게 내렸다. 이 정부가 만드는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홀대받고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백년 전쟁'의 승리다. 영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에 댓글 조작 사건 주범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6년간 회원들과 2000만원 넘는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가 밝힌 기부 사유는 "백년 전쟁 같은 좋은 다큐를 만들어줘서"다.

'백년 전쟁'의 그림자는 청와대까지 어른거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 건 의미심장하다. 대통령 뜻을 잘 헤아린다는 어느 신문은 이를 보도하면서 '대한민국 주류(主流) 교체'라고 제목을 뽑았다. 대통령은 기회만 나면 2019년을 '건국 100년'으로 삼겠다고 공언(公言)해왔다. 1919년 수립한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뿌리로 기념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출범한 대한민국을 '적폐' 보듯 하는 건 '친일파가 득세한 대한민국'이라는 '백년 전쟁 사관' 그대로다. 작년 말 야당의 끈질긴 항의 끝에 '예비비' 명목으로 겨우 막차를 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예산 30억원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절반으로 삭감됐다. 하기야 '백년 전쟁 사관'으로 보면 이 나라를 자유와 평화, 번영의 땅으로 만든 출발점인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부끄러운 역사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출범 당시 흠도 있었지만 그 상처를 꿰매고 보듬어 여기까지 왔다. 70년을 맞아 산업화·민주화의 성취를 가져온 주역들에게 경의를 바쳐야 마땅하다. 몇 년 전 박정희와 5·16을 '공모'한 황용주 전 MBC 사장 평전을 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고뇌한 그 세대 지식인들에게 위로와 경의를 표한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라고 했다.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이 정부 사람들이 '백년 전쟁' 대신 그의 사려 깊은 역사관을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언제까지 '우리 세대의 무지와 후속 세대의 경박한 오만'으로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을 패대기치고 모욕할 것인가. 보름 후 억지 시늉만 내고 지나갈 대한민국 수립 70주년이 안타깝다. '백년 전쟁'의 눈부신 승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31/2018073103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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