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위원이 만난 '盧정부때 북핵협상' 천영우 前수석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폼페이오·김영철 미·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은 핵을 선제적으로 폐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한과 핵 협상을 했던 천 전 수석은 "북한이 핵심적인 비핵화 조치를 2년 내에 완료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면서 "남북 관계 개선 속도가 비핵화 과정을 앞서나가며 대한민국이 비핵화 방해 세력이 되는 셈"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천 전 수석을 10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반도 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만나 이번 미·북 고위급 회담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핵 협상 전망을 들어 봤다.

―미·북 고위급 회담이 또 맹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짐작했던 일 아니냐."

―미국에선 실망스럽다, 불길하다는 말도 들린다.

"말들은 그렇게 하지만 속으로 놀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협상해 본 사람들은 또 시작이구나, 역시 북한은 북한이구나, 변한 게 없구나 이렇게 생각할 거다."

―북한이 이번만은 뭔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북한은 핵 카드 하나로 모든 실존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발을 헛 내디딜 여유가 없다. 그래서 핵 협상에 모든 것을 거는 자세로 임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성의 표시 차원에서라도 보유 핵 능력의 10분의 1 정도를 계약금조로 내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북한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북은 반대급부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핵이 유일한 카드인데 함부로 쓸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잘 활용했으면 북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 중단이라든지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얻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허공에 날려 보냈다."

―북은 아무것도 안 내놓았을 뿐 아니라 미국의 협상 태도에 대해 유감이라고 비난까지 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비핵화는 미·북 수교, 평화체제, 안전보장 다음 순서로 들어갔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비핵화를 먼저 해야 수교, 평화체제, 안전보장은 그 대가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이 원하는 얘기는 제쳐두고 비핵화 얘기만 하니까 그런 식으로 갈 수 없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신경전은 과거 실무자들끼리 북핵 협상할 때 습관 아니냐. 이번엔 미·북 정상이 먼저 큰 틀의 합의를 하고 그 이행을 위한 후속 회담을 하는 것이라서 북한이 달라질줄 알았는데.

"그래서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 마지막에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게 중요한 대목이다. 판은 안 깬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대로만은 못 하겠다. 우리 원하는 대로 좀 하면 안 되겠느냐고 사인을 보낸 것이다."

―북은 결국 과거 25년 핵협상 방식대로 하자는 얘기인가.

"북이 먼저 비핵화 조치를 한 다음에 보상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 없는 미국의 과욕이었다. 북이 뭘 믿고 비핵화부터 하겠나. 미·북이 서로 먼저 받으려고 하는 선후 순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은 행동 대 행동, 단계적 비핵화, 합의의 단계적 이행밖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없다."

―그런 식이면 북이 비핵화한다고 해도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느냐.

"북이 마음만 먹으면 비핵화의 90%는 1년 내에도 가능하다. 핵탄두·핵물질을 외부로 반출하고 농축시설을 해체하면 비핵화는 거의 다 되는 것이다. 비핵화에 20년, 30년 걸린다는 건 재처리시설, 원자로 해체까지 완전하게 마무리하는 기술적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판단 여부다. 그렇게만 되면 실제 비핵화 조치는 빠른 시간 내에 진행될 수 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 10일 서울 종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미·북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 전 수석은 “북한이 미국의 선비핵화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게 확인된 만큼 비핵화는 성사된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 10일 서울 종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미·북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 전 수석은 “북한이 미국의 선비핵화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게 확인된 만큼 비핵화는 성사된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태경 기자

―북한은 미국이 CVID니, 검증이니, 신고니 하는 강도 같은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다. 검증 못 받겠다는 것 아니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라고 복잡하게 말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검증(Verify)이다. 나머지는 수식어다. 검증을 해야 완전한(Complete) 비핵화인지 알 수 있고,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단계인지도 검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검증에 거부감을 표시한 것은 지금 검증 얘기할 순서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제일 마지막 순서인 검증을 왜 먼저 꺼내느냐는 것이다. 만약 실제 검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비핵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고 협상은 깨진다."

―이번 고위급 회담을 보고 북이 핵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은데 천 전 수석은 견해가 다른 것 같다. 김정은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보는가.

"아니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

―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전략적 결단 내렸다고 볼 근거는 있느냐.

"김정은이 작년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이 필요 없다는 거고 또 하나는 이제는 핵을 포기해도 1~2년이면 복원할 수 있다는 거다. 핵을 만들어 보기 전에는 핵을 폐기했다가 다시 만드는 데 4년이 걸릴지, 6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끝까지 가 봤기 때문에 1~2년이면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것이다."

―우리로선 우울한 이야기다.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인데.

"1년 내지 2년 동안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이게 현실적인 목표다. 핵 재무장에 필요한 1, 2년이라도 기간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합의가 깨지더라도 외교적이나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상대방이 핵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상태와 핵 무장까지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한 상태는 안보 전략상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걸 하나마나 한 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미·북 협상은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태로 가는 것인가.

"북한은 당분간 미국을 상대로 완전히 핵을 포기 안 하고도 타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를 테스트해보려 할 것이다. 핵을 가급적 늦게 내놓고 더 많은 것을 받아 내거나, 안 내고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김정은도 결단을 해야 한다. 다시 미국과의 대결로 돌아갈 것인지, 앞으로의 경제 발전을 포기할 것인지, 핵만 붙들고 40~50년 버틸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에서 1년 정도 후퇴하는 대가로 경제발전과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합류하는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김정은으로서도 마지막 기회를 함부로 날려버릴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북이 비핵화 속도를 내지 않고 질질 끌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무력해결 국면으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은 야구로 치면 8회까지 밀렸다가도 9회에서 게임을 뒤집을 힘이 있다. 반대로 북은 다 이긴 것 같다가도 한 회 실수하면 끝장이다. 지금 북한이 잔꾀를 부려서 샅바 싸움에서 조금 더 유리해졌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 미국의 인내가 바닥이 나면 파멸적인 국면이 올 수 있다."

―북핵 협상은 장기전 양상인데 남북 관계 개선은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하고 협의를 하면서 비핵화 이후에 북이 얻을 수 있는 여러 혜택을 미리 알려 주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제 협력이나 무역은 북핵 폐기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와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 앞으로 2년 내에 북이 핵심적인 비핵화를 마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고 미국이 최대의 압박 전략으로 돌아가는 국면이 올 수도 있는데 그때 미국과 반드시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싶어 할 텐데 2년 동안이나 기다리려 할까.

"한·미 간 공조에 틈이 보이면 북한은 비핵화 진도를 늦추든지 비핵화 합의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북한이 한·미를 이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면 비핵화가 그만큼 어려워지고 비핵화까지의 시간도 지연된다.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비핵화 방해 세력이 돼서야 되겠는가."

"주한미군 철수 얘기 자꾸 꺼내는 트럼프, 결국은 말대로 할 것… 병력 감축 대비해야"

천 전 수석에게 미·북 핵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얘기를 자꾸 꺼내는 배경에 대해서 물었다. 천 전 수석은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동맹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 틀림없다"면서 "한·미 동맹뿐 아니라 나토나 미·일 동맹 할 것 없이 동맹국들이 다 잘살면서 왜 미국을 이용할 생각만 하느냐. 왜 미국이 봉 노릇을 해야 하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참모들이 "주한미군이 한국에 있는 게 미국에 있는 것보다는 돈이 덜 든다"고 설명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있는 게 비용은 더 들어도 미국 경제에는 도움이 되고 일자리가 생긴다"고 반박한다는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묻 자 천 전 수석은 "그때는 미군 핵심 간부들이 6·25전쟁에 참전했었고 상당한 발언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번 하겠다고 했던 일들은 주변에서 말려도 대부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 측에 대폭 더 부담시키거나 주한미군 주둔 규모를 크게 감축시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11/201807110391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