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핀란드서 첫 단독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6일 핀란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양자 정상회담을 가지며 메인 이벤트로 '단독 정상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CNN이 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적·세계적 중대사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에서 수시로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미 정계와 언론계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한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국가 시스템의 뒷받침 없는 '인적 외교(personal diplomacy)'에만 의존해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회담을 하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회담을 하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릴 예정인 푸틴 대통령과의 첫 공식 양자 정상회담 때‘1대1 단독 회담’을 메인 이벤트로 준비 중이라고 미 CNN이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영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통역관 없는 단독 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크렘린궁은 즉각 성명을 내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은 러시아의 지도자에게 딱 들어맞는다(absolutely suits)"고 환영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 정계와 언론들까지 일제히 "외교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통상 국가 정상 간 회담은 포토타임이나 공개 환담에 이어 비공개 단독 회담, 양측 참모진이 배석한 확대 정상회담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단독 회담은 필수 코스는 아니지만 정상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로 활용된다. 그러나 단독 회담도 통역관 외에 비서나 기록관이 1~2명씩이라도 배석하는 게 관례다. 1985년 냉전을 종식시킨 회담으로 평가받는 미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첫 단독 회담에도 기록관이 배석, 기밀이 해제된 후 당시 대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배석자까지 물리친, 즉 '완벽한 비밀 보장'을 전제로 한 단독 회담은 양측의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만 이뤄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회담이 논란이 되는 것은 기록도 남지 않는 단독 회담을 그것도 적국(敵國)의 독재자를 상대로 남발하기 때문이다. CNN은 "배석자가 없으면 양측이 어떤 합의를 했는지 기록이 남지 않을뿐더러 (양 정상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추후 특정 현안에 대해 합의를 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대표적 선례가 지난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단독 회담이었다. 당시 미·북 정상은 양측 통역만 대동한 채 35분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통역관들은 비밀 엄수 계약을 맺고 통역 메모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비핵화 개념이나 일정이 전혀 합의되지 않은 채 김정은에게 선물만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자칭 성공적인' 회담 후 단독 회담에 탄력을 받았다"고 했다. 순전히 자신의 협상 능력으로 이뤄냈다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번 미·러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큰 의미를 갖는다. 현재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우크라이나 침공,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원, 러시아 첩보원 살해 시도 등의 이유로 서방의 국제 제재를 받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최근 G7 회의에서 "러시아를 'G8'의 일원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미국이 (러시아에 맞서는) 나토에 돈을 털리고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對)러시아 제재의 키를 쥔 미국 대통령이 푸틴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자 유럽 동맹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미 국내적으로도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과 전방위 사이버 공격 의혹으로 들끓고 있다. 러시아 개입 스캔들 수사 대상인 트럼프는 벌써부터 푸틴의 언론 인터뷰를 인용, "푸틴이 대선 개입 절대 안 했다고 했다! 난 그가 진심이라고 믿는다"고 하고 있다. 미 일각에선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이해 당사자가 국가원수 자격으로 푸틴과 회담하는 곳에 다른 미국인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푸틴을 만나 저녁을 같이 먹게 되면 '부탁이 있는데,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좀 빼지 않겠느냐'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나서면 아 무리 고질적인 문제도 다 해결된다는 믿음이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단독 회담은 트럼프처럼 자아도취적이고 정책적 디테일을 귀찮아하는 지도자에겐 본인 마음대로 회담을 끌어가고, 그 결과를 '무조건 성공'으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도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노련한 푸틴이 '외교 신인' 트럼프를 마음대로 요리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5/20180705001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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