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열 논설위원이 만난 '서울교육감 선전' 박선영 교수
 

권대열 논설위원
권대열 논설위원

지난 지방선거 때 서울 교육감에 출마한 박선영 동국대 법대 교수(18대 국회의원)는 36.2%를 얻었다. 조희연 현 교육감(46.6%)에게 졌지만 안철수 후보가 사실상 지원한 조영달 후보가 '기호 2번'이 되면서 17.3%를 가져간 것, 보수 진영 인사들 요청으로 선거 개시 한 달 전에야 급하게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52%, 김문수 후보가 23%, 안철수 후보가 20%를 얻었다. 그가 이사로 있는 '통일과 나눔' 재단 사무실에서 26일 만나 이번에 느낀 '대한민국 보수'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 유권자들 정서에 대해 들어봤다. 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과 대변인 등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기도 한 그는 "보수 정당뿐 아니라 진영 전체가 망한 상황으로 본다"며 "국민은 자유보다 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을 더 바라고 있고 보수는 그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거 후 2주가 지났다. 돌아보니 뭐가 제일 아쉬운가.

"아쉬운 거 전혀 없다. 정말 열심히 싸웠다. 선거 한 달 전에야 출마가 정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밖에 안 되고, 돈과 조직도 전혀 없었다. (보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많은 실망도 했지만 보수의 희망도 봤다. 열심히 했기에 아쉽지 않다."

―보수의 희망? 전멸 수준의 패배 중에 어디서 희망을 봤다는 건가.

"어떤 자원봉사자께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셨다. 스스로 찾아와 뭐라도 돕겠다며 걸레질도 했다. 나중에 봤더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 사모님이었다. 그런 분이 참 많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누구라고 한 마디도 안 하신 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젊은 층도 처음에는 내가 아는 제자 등으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늘어났다. 모두 '교육과 나라가 걱정이 된다'면서 도와주신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보수 진영 후보로서 이번 선거 상황이 많이 어렵던가.

"사무실도 못 구할 정도였다. 시내에 그렇게 빈 사무실이 많지만 대부분 '안 되겠다'고 했다. 계약하러 갔다가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갈수록 '힘내라'는 분이 많아졌다. 다른 선거에서 보수 정당 후보들은 선거 비용을 펀드 형태로 모으려는 시도도 못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저에게 16억원이 모였다. 법적 한도가 20억원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원이 늘어갔다."

―'보수는 분열하고 진보는 단일화한다'는 것이 매번 교육감 선거의 특징이다. 이번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다고 느꼈나.

"선거를 1년 이상 준비한 분들이다. 예비후보 단계에선 1000만원 등록비만 있으면 된다. 그런 후보들 뒤에는 단체나 조직들이 있다. 그중에는 종교 단체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단일화가 쉽지 않다. 경쟁하다 밀리면 승복하고 힘을 합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보수의 더 큰 문제였다. 반면 진보 쪽에서는 보수 기득권을 깨기 위해 과거부터 단일화 노하우와 문화가 정착돼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 단일 후보로 등록했다. 그런데도 도와주지 않던가.

"내가 동성애 옹호론자라고 공격한 것도 보수 진영 예비후보 측이었다. 동명이인과 혼동에서 비롯된 잘못이라는 게 드러났지만 지금도 철회하지 않고 있다. 다문화 존중을 얘기했다는 이유로 나를 이슬람교도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다 보수 쪽 경쟁 진영에서 만들어 퍼뜨린 말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정당만 망한 것일 뿐 보수가 망한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나는 둘 다 망했다고 본다. 선거 4일 전까지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남동 젊음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들이 환호하며 맞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박선영 찍었다'고 말한 뒤 급격히 반감이 커졌다. 시민들이 명함을 잘 받아줬는데, 그 뒤로는 '너 홍위병이었느냐'며 뿌리치고 어떤 분들은 땅바닥에 팽개치고 밟기도 했다."

서울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박선영 동국대 교수가 26일 통일과나눔재단 회의실에서 선거 과정에서 느낀 보수의 현실과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보수 정당뿐 아니라 진영 전체가 망가진 상황”이라며 “울분과 분노만으론 상대를 못 이긴다.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자가 쓰고 그려준 글과 꽃 그림으로 만들어 선거운동 때 사용했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서울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박선영 동국대 교수가 26일 통일과나눔재단 회의실에서 선거 과정에서 느낀 보수의 현실과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보수 정당뿐 아니라 진영 전체가 망가진 상황”이라며 “울분과 분노만으론 상대를 못 이긴다.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자가 쓰고 그려준 글과 꽃 그림으로 만들어 선거운동 때 사용했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이태경 기자

―한국당에 그렇게 민심이 좋지 않던가.

"나도 그 정도까지일 줄 몰랐다. 홍 대표가 나를 찍었다는 말을 듣고 '5%는 까먹겠다'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당의 문제는 무엇이며 2년 뒤 총선에는 가능성이 있겠나.

"문제가 뭔지를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여당 노릇도, 야당 노릇도 못 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직언하지 않았고 용비어천가만 불렀다. 그래 놓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한국당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적으로 뭔가 외부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체 힘으로는 다음 총선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한국당만이 아니라 보수 자체가 무너졌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현장에서 보니 보수 유권자들 마음속에는 자괴감, 분노, 억울함 같은 것이 쌓이고 쌓여 있더라. 나라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서 울화가 돼 있다. 문제는 이걸 잘 승화시켜야 하는데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고 있다. '나라 망한다'고만 하면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는다. 젊은 층이나 중도 성향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접근은 '강요'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도 자꾸 그러다 보니 이제 다 (보수 주변에서) 도망가 버리고 그분들끼리만 섬처럼 남아 있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15% 정도다. 이게 보수의 현실이다. 울분과 분노만으로는 절대 상대를 이길 수 없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보수 진영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일례로 교육 문제를 들었다. "유치원 무상교육 같은 문제를 과거 틀에서 반대만 해선 안 된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세금 퍼주기'라고 해선 안 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다.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기회 불평등 문제가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내가 '유치원 교육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더니 당장 캠프 내부에서 '세금 퍼주기 안 된다'고 반대하더라. 보수는 변화를 먼저 읽고 진보보다 앞서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지금 보수 진영에는 부족하다."

―보수 정당은 무상 급식, 무상 교복 등에 반대해왔다. 틀린 방향이었다는 얘기인가.

"헌법은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빈부가 능력이 돼선 안 된다. 과거 우리나라가 아이는 많고 재원은 없을 때는 충분한 교육 서비스 제공이 어려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부모에 관계없이 누구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진보·좌파, 10명은 전교조 출신이다. 어떤 일들이 생길 것으로 보나.

"대한민국은 정점을 찍고 급격히 내려갈 거다. 유치원부터 전교조식 교육이 될 거다. 그들은 경쟁 자체를 죄악시한다. 시험도 안 보겠다는 것 아닌가. 시험은 서열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보는 것이다. 거기서 우수한 능력을 찾아내고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세상은 20%가 80%를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는 정말 능력 있는 5%가 나머지 95%를 책임지는 사회가 된다. 그런 5%를 전교조식 교육으로는 찾고 키울 수 없다. 그리되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가 없다."

박 교수는 '95%, 5% 사회'를 얘기하면서도 보수 진영에 한마디를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미래 사회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못 했다. 지금까지의 '보수'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5%가 내는 세금으로 95%를 살리는 방식은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회 흐름상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보수는 이에 대해 가진 대안이 뭐라고 먼저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안 된다'고만 하니 현실과 국민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선거를 거치면서 보수가 살려면 어떤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고 느꼈는가'라는 질문에도 비슷한 맥락의 답을 했다. "흔히 '보수=자유, 진보=평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자유'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수 진영이 자꾸 자유를 얘기해봐야 국민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굉장히 평등 지향적이다. 21세기는 점점 더 사회 불평등 구조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가 '평등' 문제에 계속 딴죽을 거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사회 불평등, 특히 기회의 불균등 문제에 대해 보수는 진보보다 더 앞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北 눈치 보는 나라 되나… 탈북자들은 현 상황이 착잡보수, 反共보다 인권 말해야"

박선영(62·헌법학 박사) 동국대 교수는 탈북자 지원과 북한 인권 운동을 벌여온 물망초재단 이사장, 통일과나눔재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는 등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 "어제도 그분(탈북자)들과 만났다"는 그는 "현재 북한과 벌어지는 여러 일을 보면서 탈북자들은 착잡한 심정들"이라고 말했다. "북한 전체주의 독재를 탈출하기 위해 목숨 걸고 넘어왔는데 '이렇게 북한 눈치 보는 나라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며 "김정은으로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산소 호흡기 정도를 기대했는데, 아예 나라 전체를 재건하는 수준으로 해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서 세계 지도자급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해줬다"고 했다. 박 교수는 "종전(終戰), 평화, 통일 이런 것을 앞세우기 이전에 인권 문제로 접근을 해야 통일도 되고 진정한 평화도 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 역시 북한 문제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을 공산 정권으로 놓고 과거 반공 주의식 접근을 하면 안 된다"며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고 주사파 전체주의, 세습 국가"라고 했다. "이데올로기 문제보다는 인권 측면에서 북한에 요구할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미국 정부가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부터 시작한 것도 인권 문제를 푸는 것으로 접근해서 북핵과 관계 정상화 문제를 풀겠다는 계산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7/2018062704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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