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5일 방송 인터뷰에서 "17일 북한에 전화하려고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이 직접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직접 통화한다는 얘기다. 가까운 동맹국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미·북 정상회담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의 목표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김정은과의 통화 계획을 밝힌 것은, 회담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두 사람이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 아닌가 짐작된다. 양국 정상 관계가 이렇게 가까워졌는데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올 들어 남북 정상이 두 차례나 만났고 70년간 적대 관계였던 미·북도 첫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제는 핫라인 통화까지 거론하는 정도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서로 핵 발사 단추 크기를 자랑하며 당장이라도 핵전쟁을 벌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던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다. 남북이 자주 만나고 미·북 역시 발전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연초부터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는 얘기가 반복해 나오고 있지만 누구도 김정은이 자기 입으로 비핵화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김정은이 평양에서 우리 특사단을 맞이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판문점에서 두 번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상봉 장면들이 모두 동영상으로 소개됐지만 김정은은 비핵화는커녕 핵이라는 단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CVID라는 문구가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면 합의문에 넣었던 '완전한 비핵화'라도 자기 입으로 말하면 될 텐데 굳이 피했다. 지키기 힘든 약속이라서 육 성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드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확고한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했으며 김정은과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은 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에게 "나에게 했던 비핵화 약속을 공개석상에서 분명하게 밝혀 달라"고 촉구했으면 한다. 그래야 미·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마뜩지 않아 하는 여론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7/20180617025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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