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찰스 램 '인류의 두 종족'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친근한 사적(私的) 수필의 원조인 19세기 영국의 문필가 찰스 램은 '인류의 두 종족'이라는 수필에서 인류를 돈을 꾸는 종족과 꿔주는 종족으로 분류하면서 돈을 꾸는 종족은 언제나 호방하고 활수(滑手) 좋고 당당한 데 반해 돈을 꿔주는 종족은 평생 '호갱' 신세로 기를 못 펴고 산다고 한다. 램은 '꿔주는 종족'의 일원인 소심한 자신을 이렇게 희화화했다.

남북 교류라는 것이 시작된 이래 나의 크나큰 의문은 '협상에 나오는 북한 대표들은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당당할까' 하는 것이었다. 가난해서 국민이 무더기로 굶어 죽는 나라, 인권 상황이 최악인 나라, 지구상 유일한 세습 공산 정권의 얼굴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표들과 마주 앉으면 저절로 주눅이 들 텐데, 놀랍게도 북한 대표들은 뻔뻔하고 고압적이며 억지 주장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외교관 재목은 대학 과정에서부터 협상법을 훈련받는다지만 훈련으로 본성까지 고쳐질까? 놀랍다.

반면 우리 대표단의 겸손하고 유연한 자세는 어쩐지 북한 사람들과 맞서기에 허약한 느낌을 준다. 훌륭한 외교관의 태도이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강하게 나갔으면 싶은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그림이 기울어 보이고, 협상에서도 과도한 양보를 하기 일쑤이다.

북한 측은 거액 지원금을 받아도 고맙다는 말 대신 "왜 이것밖에 안 가져왔느냐?"고 질책한다고 한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김정일이 회담 대금이 다 안 들어왔다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했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는 김정일은 반말 반, 존댓말 반으로 대하는데 노 대통령은 꼭꼭 존댓말을 바쳐서 분통이 터졌다.

북한이 김정은 일행의 싱가포르 숙박비(수십만달러 예상)를 미국에 내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한국이 뒤집어쓰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싱가포르 정부와 전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 기관 I CAN이 비용 부담을 자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미·북 정상회담이 잘되면 북핵 폐기 비용이 적어도 수백조원은 들 것이라는데, 그 비용 대부분을 남한이 부담하게 되지 않을까? 나라가 쓰러질 수도 있는 거액인데, 남한이 돈 퍼주어 핵무기를 만들게 했으니 그 폐기 비용도 남한이 치르는 것이 맞는 것일까?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책임지겠다던 분을 모셔오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4/20180604029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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