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아니냐” 美北 정상회담 취소에 시민들 당혹
“어제 핵실험장 폭파 보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핵 거론’ 트럼프 회담 취소문에 주목하기도

다음달 12일로 예정됐던 미·북 정상회담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가짜뉴스 아니냐”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트럼프 편지에 (북한) 타격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며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미·북 양측이 대화의 여지(餘地)를 남겨둔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신중론’도 나왔다.

◇“핵실험장 폭파 뉴스 보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도 서로 뉴스를 화제 삼아 이야기 나눴고, 함께 여행 가기로 했던 동창생들은 “정상회담 무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하는 문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제 분명히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뉴스를 보고 잤는데, 일어나 보니 애들이 ‘아빠, 전쟁 나는 거 아니야’하고 물어요. 한반도 정세가 하루아침에 왜 이렇게 됐는지…” 직장인 이모(47)씨가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용산역에서 만난 박용태(74)씨도 “다시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간 것 같아 화가 난다”며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도 없겠고, 이제 와서 의미 있는 협상카드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미·북 정상회담 뉴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소영 기자

직장인 허성진(35)씨는 이날 오전 내내 스마트폰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최근 투자한 남북 경협 테마주(株)들이 일제히 하락한 까닭이다. 허씨는 “대화 무드를 보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하루종일 롤러코스터”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반도 상황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서한에 “북한이 핵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것은 거대하고 강력하다. 나는 그런 핵무기들이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에 주목하는 시민도 많았다.

전직 대령 출신 김모(60)씨는 “자꾸 우리 편한대로 ‘전쟁만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트럼프는 싸움꾼”이라면서 “시리아, 이라크만 보더라도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되면 뜬다”던 경기 파주시는 가라앉은 분위기다. 파주시민 윤우형(38)씨는 스마트폰으로 ‘비상식량’ ‘지하벙커’ 같은 단어를 검색했다. 윤씨 얘기다. “북한과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까… 혹시 모르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아는 놔야겠다 싶어서요.”

◇”트럼프가 속였다” VS “엉뚱한 소리 한 북한 잘못”
서울역에서 만난 김효순(62)씨는 “트럼프가 우리를 속였다”는 반응이었다. 김씨는 “트럼프가 세계적인 사기극을 펼친 것 아니냐. 우리가 놀아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안철환(63)씨도 “약소국이라서 이렇게 당하는 것 같아 어젯밤 눈물이 날 정도였다”며 “북한이 (미국인) 인질을 내줬고, 갱도 폭파까지 했는데 완전히 (트럼프에) 사기당한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북한이 회담 결렬을 자초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TV를 보던 이모(63)씨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폭언을 퍼붓고, 으름장을 놓은 쪽(북한) 잘못”이라면서 “비핵화도 말뿐이고 수법이 뻔히 보이니까 미국이 저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에 거주하는 박모(36)씨는 “미국은 ‘비핵화’라는 하나의 원칙만 고수하고 있는데, 북한이 비정상적 반응을 보여 대화무드가 깨진 것”이라면서 “이 같은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시각과 동떨어지게 국내에서는 ‘미국이 깽판 친다’ ‘외세에 휘둘려서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아서 솔직히 그게 더 놀랍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은 시민들이 미·북 정상회담 취소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고성민 기자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임민섭(28)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訪美) 직후라, 미·북 정상회담 취소 소식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트럼프가 기 자들 앞에서 ‘문 대통령 이야기는 통역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 의미심장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양승덕(46)씨는 “남북한이 분단된 지 70년이나 흘렀고 역사적인 큰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며 “특히 미국과 북한 모두 입장문을 대화 채널을 언급한 만큼 상황을 신중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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