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정상회담 취소]

文대통령 '美北회담 맞춰 싱가포르行' 제안… 트럼프 불편한 반응
단독회담 갑자기 21분으로 줄어… 백악관 시종 껄끄러운 분위기
한국이 각종 대북보상안 꺼내자, 美측 '지나치게 앞서간다' 여겨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2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단독정상회담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미·북 회담과 관련한 이상 기류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부터 감지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6월 12일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에서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과 대북 지원책을 제안했지만, 미국 측은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핵 폐기가 아닌 대북 보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앞서간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24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 맞춰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물밑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바로 남·북·미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종전(終戰) 선언'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초 '판문점 미·북 회담 직후 남·북·미 3자 회담 개최' 방안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북 회담 장소를 논의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미·북 회담 장소로 최종 결정하자 문 대통령이 직접 싱가포르로 가서 3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국이 종전 선언을 함께 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워싱턴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후 백악관은 껄끄러운(strained) 분위기"라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차례에 걸친 방중(訪中) 이후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자 백악관에서는 '정상회담을 해야 하냐'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백악관의 기류와 달리 한국 측이 지나치게 앞서가는 얘기만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위에 남·북·미 3자 회담을 할 경우 자신에게 집중돼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될 수 있다는 취지의 불만도 제기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도 싱가포르 방문안을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물밑에서 준비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이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방문 계획을 묻자 "현재로선 없다. 싱가포르 방문이나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은 전적으로 미국과 북한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 문제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데 대해서도 백악관은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대북 의료·농사 지원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30분으로 예정됐던 단독 회담이 21분 만에 끝난 것도 이 같은 이상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양 정상이 배석자 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독 회담은 청와대가 이번 방미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던 대목이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 회담 직전) 돌발적으로 취재진과의 문답을 34분이나 해 이후 일정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단독 회담이 이처럼 단축된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싱가포르 미·북 회담 후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회담 성과를 홍보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담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이를 취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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