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모스크바를 찾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찬을 냈다. 식탁에 오른 고급 음식 캐비아(철갑상어 알)가 화제가 되자 푸틴이 알 채취법을 설명했다. '어부들이 캐비아를 제왕절개 방식으로 꺼낸 뒤 철갑상어 배를 꿰매 바다로 돌려보낸다.' 푸틴이 농담한다고 생각한 미국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캐비아 채취를 위한 '철갑상어 개복수술'은 사실이었다. 일본이 1970년대 처음 시도한 이래 러시아에서도 이 방법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러시아 카스피해에 많이 사는 철갑상어는 한반도에서도 드물게 잡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철갑장군'(鐵甲將軍)으로 나온다. 비늘이 단단해 두드리면 쇠붙이 소리가 나고 맛도 뛰어나다고 했다. 우리나라 철갑상어는 바다에서 생활하다 산란을 위해 강으로 올라오는 물고기다. 1960년대까지 한강에서도 종종 발견됐는데 멸종 위기에 놓여 1996년 보호 어종으로 지정됐다. 국내에서 20여년 전부터 양식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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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상어는 알뿐 아니라 살코기도 고급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굽거나 튀기기도 하고, 수프에 넣거나 회로 먹기도 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지난 3월 대북 특사단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 부부와 만찬을 했을 때도 철갑상어 요리가 올라왔다.

▶북한 선전 기관들은 2009년 평북 양어장에서 철갑상어 양식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캐비아란 이름도 모를 것이다.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캐비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평양 옥류관에서도 철갑상어 튀김, 꼬치구이 요리를 내놓고 있다.

▶'철갑상어, 거위, 바닷가재, 스테이크, 바나나 아이스크림….'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워싱턴포스트 캐럴 모렐로 기자는 북한 당국이 폼페이오 장관을 위해 차린 오찬 메뉴를 취재기에 소개했다. 모렐로는 '일부 국무부 직원은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썼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 계획(WFP)은 2017년 북한 인구 41%인 1050만명이 기근에 시달렸다고 최근 밝혔다. 어린이 20만명은 합병증을 동반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철갑상어가 식탁에 올라왔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 주민이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3/20180513018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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