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월 말~4월 초 북한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9일(한국 시각) 또 방북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 기준으로 두 번째 방북이다. 그의 첫 방북은 극비리에 이뤄졌지만, 이번엔 평양 도착 전 방북 사실이 공개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전 8시 35분 평양에 도착했다.

첫 방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진심인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방북은 미·북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 의제 등 세부사항을 최종 확정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미국으로 데려가려는 의도도 뚜렷하다. 두 번의 방북 과정을 비교해 봤다.

◇ 첫 방북은 극비 vs 두 번째는 도착 전 공개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동부시각 8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백악관에서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를 발표하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깜짝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 일행이 급유를 위해 일본에 들르기 직전이다. 그는 “사실 바로 지금 이 순간 폼페이오 장관이 곧 있을 나와 김정은과의 회담을 준비하러 북한에 가는 중”이라며 “아마 한 시간 후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몇 시간 후 트위터를 통해 “북한 지도부의 초청으로 북한에 다시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성공적인 정상회담 계획을 세울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장관이 3월 말~4월 초 북한을 방문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백악관

도착 직전 방북 사실이 발표됐지만, 방북 준비는 극비로 진행됐다.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동 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CIA 국장 출신답다는 평이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 시각 7일 오후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에어포스 757기를 타고 비밀리에 출발했다. 브라이언 후크 국무부 정책기획 담당,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 고위 관료들이 동행했다. 기자 두 명(AP와 워싱턴포스트 소속)도 함께 갔다. 폼페이오 장관 측은 출발 약 4시간 전에 기자들에게 방북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 일행은 급유를 위해 일본을 경유한 후 한국 시각 9일 오전 8시 35분 평양에 도착했다. 북한 관리들이 폼페이오 장관 일행을 맞이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첫 방북은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극비리에 이뤄졌다. 그는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자 국무장관 지명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오산 미 공군기지를 거쳐 평양에 간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확한 방문 경로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의 방북 사실은 2주가 지나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플로리다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중 “우리는 북한과 최고위급에서 직접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위급 인사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이 부활절 주말에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최고위급 인사가 폼페이오로 확인된 것이다.

백악관은 지난달 26일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찍은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두 사람이 정면을 보며 악수하는 모습, 서로 마주 보며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앞서 같은 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의 아침 토크쇼 ‘폭스 앤드 프렌즈’와 전화 인터뷰를 하며 폼페이오와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 후 8시간쯤 지나 사진이 공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2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취임식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AP 연합
◇ 첫 방북 땐 예정 없이 김정은 만나 vs 이번 방북 땐 만남 미정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도 김정은을 만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 의제를 확정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을 만난다는 정도만 공개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도착 후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첫 방북은 북한이 긴장 완화와 관련해 한국에 한 약속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번 방북은 성공적인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틀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인 억류자들이 석방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도 시사했다고 AP는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018년 5월 8일(미국 시각) 북한을 다시 방문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폼페이오 트위터
폼페이오 장관은 첫 방북 때 예정에 없이 김정은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는 원래 김정은을 만나기로 돼 있지 않았지만, 만났다”며 “사실 폼페이오가 거기 있는 동안 그들(북한)이 (두 사람이) 인사(헬로)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시간 이상 만나 대화했다고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29일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나눈 대화를 일부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이뤄질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2일 폼페이오가 2박 3일 일정 동안 회식을 포함해 김정은과 3~4차례 회담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은 회담 후 폼페이오 국장에 대해 ‘내 배짱과 이렇게 맞는 사람은 처음이다’라며 기뻐하고 만족해했다”고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장관이 3월 말~4월 초 북한을 방문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백악관
◇ 두 번 모두 김정은 방중 후 폼페이오 방북

폼페이오 장관의 두 차례 방북은 모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이뤄졌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삐걱거리는 신호가 나오자 또 시 주석을 찾아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이 7~8일 중국 다롄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지 하루 만에 방북했다. 김정은은 3월 25~28일 첫 중국 방문 이후 43일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해 시 주석과 또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은의 2차 방중은 북한이 최근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직후 이뤄졌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3월 초 이후 대미 비난을 자제했으나, 최근 미국 정부가 비핵화 기준을 높이고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시 비난 모드로 돌아섰다. 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만나 회담하는 사진이 2018년 5월 8일 공개됐다. 김정은의 방중은 3월 말 이후 43일 만이다. /신화통신
김정은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나는 대화를 통해 미국과 상호 신뢰를 쌓고 싶다”고 말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은 전했다.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확고부동하고 명확한 입장이며 관련 각국이 대북 적대 정책과 안전 위협을 없앤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고 비핵화는 실현 가능하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조치를 다시 꺼냈다. 시 주석은 김정은과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대북 경제 제재 유지 방침을 확인했다. 두 정상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해체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폼페이오의 첫 방북 직전에도 김정은은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 집권 후 첫 방중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시 주석에게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조치를 처음 언급했다.

김정은이 중국을 연이어 방문하고 폼페이오를 평양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중국을 이용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김정은의 첫 방중 이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전면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달 2일 2007년 7월 이후 11년 만에 외교부장으로서 단독 방문했다. 왕이 부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중국은 북한과 소통을 강화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에서 응당해야 할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 발휘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와 관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9/20180509012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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