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27일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물론 북한과도 논의할 이슈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티스 장관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제나 추정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주한미군 문제를 북과 논의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연내 평화협정 체결 추진'에 합의하자 미국 쪽에서 곧바로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변경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북한은 수십 년간 줄기차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해왔다. 역대 모든 한·미 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이에 대해서만은 그 일말의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확고한 입장 때문에 김정일도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나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평양 방문 때 '미군 주둔을 인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물러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주한미군에 대해 미국이, 그것도 가장 엄격한 입장을 가져야 할 국방장관이 '논의할 수 있다'고 해석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세계 전략 차원에서 본다. 한반도에서 군대를 빼더라도 일본이나 괌 등의 기지로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한미군은 아직까지 생명선이다. 주한미군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 없어서가 아니다. 주한미군이 북의 오판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발발 전에 억지해야만 하며 주한미군의 존재가 바로 그 억지력의 핵심이다.

현재 한·미 간에 전시작전권 전환을 추진 중이지만 완성되지도 않았고 그런 임무 전환도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이 연내에 이뤄진다 하더라도 종이 문서에 불과하다. 실제 전쟁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는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각종 군사 안보적 장치로 한반도에 확실한 평화가 정착된 뒤 동북아 전체 군축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티스 장관이 이날 "외교관들이 이제 그(평화협정과 미군 주둔) 문제를 관장해야 할 것"이라고 한 것은 성급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미·북 간에는 정상회담 준비 접촉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3~4주 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 것을 보면 상당한 진척이 있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양측 모두 협상 카드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청와대는 29일에도 "군축 문제는 긴장이 완화되고 북핵 문제가 잘 풀릴 경우에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북한이 제기하지도 않은 문제를 미 국방장관이 공연히 언급한 것이 된다. 그럴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아무래도 미국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우리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생각을 갖고 북과 접촉하고 있을 개연성이 더 높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남·북·미·중 3자 또는 4자회담'을 합의했지만, 1990년대 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때 북한은 2년여 동안 주한미군 철수만 주장하면서 회담을 무산시켰다. 그 기간에 우라늄 농축 설비를 사들이고 가동했다.

지금은 주한미군이 아니라 북핵의 완전한 폐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할 때다. 미 백악관은 남북 정상회담 뒤 성명에서 "북한의 번영하는 미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에 달렸다"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인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폐기 때까지 전 세계적인 최대의 대북 압박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 되면 북핵은 없어지고 이 말대로 되지 않으면 북한에 또 속고 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9/20180429018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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