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지시로 홍콩서 납치돼… 崔 "내 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납북 당시 김정일과 함께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두 사람은 영화 17편을 찍으면서 김정일의 신뢰를 얻었다.
납북 당시 김정일과 함께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두 사람은 영화 17편을 찍으면서 김정일의 신뢰를 얻었다. /엣나인필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김정일의 지시로 이뤄진 납치였다. 2007년 본지 인터뷰에서 최은희는 "북한 땅으로 납치돼 처음 대면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 선생 보기에 내가 어떻게 생겼습네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면서 껄껄 웃더라"고 말했다.

같은 해 납북된 신 감독과는 1983년에서야 북한에서 재회했다. 2016년 미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에는 이들의 납북 전후 과정과 북한에서의 생활이 상세히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김정일은 신 감독에게 "우리 거하고 합쳐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서방에 보여주자는 거요. 그래서 내가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커요"라고 했다. 최은희는 2003년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에 있었던 만 8년 중 2~3년간 신 감독님과 초인적으로 영화 17편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해준 점에서는 북측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북한에 혼자 있었을 당시 한겨울 대동강이 눈을 맞아 보석처럼 빛나는 광경을 보면서 '탈출하면 꼭 영화 장면에 넣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1978년 납북됐던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1986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영화 촬영차 떠났다가 현지 미국 대사관으로 망명해 탈북에 성공한다. 사진은 그 당시 동유럽 한 국가에 머물던 두 사람의 모습. /연합뉴스

두 사람은 이후 북한에서 3년 동안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어야 했다. 이때 함께 만든 영화 '소금'으로 최은희는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많은 영화를 찍으면서 두 사람은 김정일의 신뢰를 얻는다. 덕분에 영화 촬영을 핑계 삼아 1986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갈 수 있었고 그곳의 미국 대사관을 통해 극적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곧바로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당시 '두 사람은 애초 납북된 게 아니라 월북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최은희는 이에 대해 2013년 인터뷰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면서 "북한에서 나보고 '자진 월북했다'고 말해달라고 할 때도 나는 '말 같지 않 은 말 하지 말라'고 악을 썼다"고 했다. 최은희는 미국에서 오랜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1999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2010년 본지 기고문에서 최은희는 이렇게 썼다. '나는 분단국가의 유명 배우라는 이유로 인생의 전환기마다 타의에 의해 고난을 겪어야 했다. 다른 이의 삶을 연기하는 영화배우로 살았지만, 내가 살아온 길 자체가 한 편의 영화가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7/201804170026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