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모 루스벨트호가 속한 제9 항모강습단은 6일부터 이틀간 남중국해 남부에서 싱가포르 해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도 2012년 취역한 랴오닝호 전단을 남중국해 하이난 해역에 보냈다. 시진핑 주석이 랴오닝호 전단을 검열하는 관함식(觀艦式)에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웬만한 나라의 전체 군사력보다 더 큰 능력을 갖춘 미·중 항모 전단이 남중국해에 동시 진입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초유의 사태다. 전 세계가 우려해 왔던 미·중 패권(覇權) 경쟁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중국 관영 언론은 8일 미·중 간 무역전쟁이 패권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며 '(6·25) 항미원조 전쟁에서 미군과 싸웠던 방식으로'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미·중 두 나라 관계가 무역·군사 양 분야에서 진짜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내심으로는 현재의 충돌 양상이 실전(實戰)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선가는 서로의 국가 위신을 지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려되는 것이 우리 민족 전체의 생존 문제가 걸린 북핵 문제가 미·중 대결 구도의 종속 변수가 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관계마저도 상거래 관점에서 접근한다. 상대방을 최대한 몰아붙인 뒤 자신이 원하는 협상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최대한 압박으로 5월 미·북 정상회담을 끌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상대로 각종 무역 보복 조치를 쏟아내면서도 언제든지 타협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도 함께 보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미·북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소외되는 흐름이 형성되자 김정은을 중국으로 불러 북·중 관계를 복원시켰다. 중국을 건너뛴 북핵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편에선 일대일로 맞서면서 또 한편에선 북핵 해결의 타협점을 함께 도출해야 할 입장이다. 미·중이 양국 간 현안을 타결하는 과정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 부분을 북핵 문제에서 벌충하는 식의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도 시진핑도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주변국 관계쯤은 언제라도 희생시킬 수 있는 자국 우선주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한반도 상황의 운전대를 모처럼 잡았다고 믿고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중이 우리 머리위에서 다른 거래를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면밀히 관찰하며 대비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 운명을 쥐락펴락했던 불행한 과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8/20180408019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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