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정부가 혁명 언급한 횟수는 제3공화국 시절보다 많을 것
改憲까지 혁명처럼 밀어붙이고 과거사는 '反혁명' 취급할 건가
 

이한수 문화1부 차장
이한수 문화1부 차장
지금 정부처럼 '혁명'을 자주 말한 정부는 없을 것 같다. 현 정부 인사들이 '혁명'을 언급한 횟수를 센다면 '혁명'을 내걸고 군사를 동원해 집권했던 제3공화국 때보다 많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촛불 혁명의 완성"을 주창한 이래 때마다 '혁명'을 언급했다. 지난달 26일 개헌안을 발의하면서는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은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낙연 총리는 "정부 공직자들은 촛불 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도구"라 했고,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촛불 혁명을 대의민주주의 대안으로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6월 지방선거에 나설 여당 예비 후보들은 앞다퉈 "촛불 혁명의 완성은 지방 정권의 쟁취"라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혁명' 운운하는 일엔 대개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이용해 정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혁명을 말하는 일은 헌법이 정한 '민주 공화' 가치에도 어긋난다.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청산해야 할 반(反)혁명 분자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500년 전 피렌체 공화정 공직자이자 정치 교사인 마키아벨리(1469~1527)는 혁명이란 말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리볼루치오네(rivoluzione·혁명)'란 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군주론'에서 메디치 가문에 경고하는 뜻으로 딱 한 번 썼다. 다른 대표작 '로마사 논고'에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유력자 가문의 젊은 정치 엘리트를 가르치려고 쓴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는 '폭동' '봉기' '정체 변화' '혁신' 같은 말은 쓰면서도 '혁명'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의 침묵'에는 이유가 있다.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제자들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혁명적 참주나 제왕적 리더십과는 다른 민주적 리더십을 가르치려 했기 때문"(곽준혁,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이다. 정치란 갈등하는 여러 의견을 조율해 조금씩 진전을 이루는 일이지, 정적(政敵)을 처단하고 공직(公職)을 독점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개헌도 혁명 과정으로 여기는 듯하다. 혁명의 대의 앞에서 절차는 사소할 뿐이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전자결재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총리가 국무회의에서 40분 만에 의결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초안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개헌안에 숨은 저의(底意)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

정 교수는 2016년 17쇄를 찍은 책 '해방전후사의 인식4'에서 "해방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혁명의 내용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며 "북한에서 혁명은 소련군의 후원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남한에서는 이러한 혁명이 미군정의 반혁명 정책에 의해서 결국 좌절되었다"고 썼다.

헌법 전문 '4·19 민주 이념'을 굳이 '4·19혁명'으로 바꾼 점도 우려스럽다. '민주 이념'이라 할 때 4·19는 제1공화국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에 시민·학생이 궐기한 일로 규정된다. '혁명'이라 할 때는 그 대상이었던 이승만 정 부의 모든 정책이 반혁명 행위로 전락한다.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일이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반혁명 행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헌법 전문은 조항과 똑같은 효력이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어떤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반혁명 분자가 뭐라든 '내 갈 길 간다'는 혁명 의지가 결연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3/20180403039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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