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KBS 아나운서
강성곤·KBS 아나운서

"영국은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그들은 전쟁 말고는 무엇이든 해내기 때문이다. 독일은 분명히 질 것이다. 독일인은 할 줄 아는 게 오직 전쟁밖에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어느 이탈리아 종군 기자가 한 말이다. 놀랍게도 그의 말대로 됐다. 이건 일종의 '착한 부조리(不條理)'다. 신념의 선의가 결정적일 때 작동해 놀라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행운)를 빚어낸 건 아닐까.

우리네 삶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오타비오가 겪는 것처럼 복잡하고 고약한 부조리가 훨씬 더 많다. 오타비오가 사랑하는 여인 안나는 바람둥이 조반니를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오타비오는 안다. 자신이 결투에서 지면 안나가 그놈 품에 안길 것임을. 그래도 그녀는 사랑스럽다. 그러니 칼을 들어야 한다. 이때 오타비오가 부르는 아리아가 '일 미오 테소로(나의 보석이여)'다.

우리는 모두 한때 오타비오였고 여전히 오타비오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왜 늘 다른 곳을 바라보는가. 그녀가 내게 주는 이 굴욕은 합당한가. 이 초라한 질곡과 길항의 늪에서 과연 희망은 있는가. 그녀가 밉고 밉다. 그러나 오늘 밤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오타비오를 떠올리면 요즘 우리나라 모습이 겹쳐 보여 애틋하다. 만날 상처만 주고 마음의 피까지 흘리게 한 북한이 웬일로 애정 표시를 해왔다. 그런데 속마음은 미국에 있다나? 미국은 오랜 친구이고 잘살지만 최근 부쩍 괴팍해졌는데, 참 난감하다. 언제는 원수 사이라더니…. 보기보다 옹 졸한 중국한테까지 상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윗동네 호시탐탐 덩치왕 러시아, 아랫녘 얍삽한 일본은 잘되길 바란다지만 아닌 것 같다. 툭하면 툴툴거리기나 하고…. 얄궂은 운명이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많은가? 능력과 의지로 되는 일이 징글맞게도 없는가? 여기 오타비오가 있다. 혼돈과 고통 속에서도 짐짓 씩씩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3/20180403001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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