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진핑 회담]

본색 드러낸 북한… 韓·美의 북핵해법과 모두 충돌

단계 나누고 그때마다 보상 요구… 과거 협상때 北이 사용했던 전술
美 "과거 실패한 협상" 수차례 강조… 文대통령 일괄타결 구상과도 배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방안으로 거론한 '단계적 동시 조치' 주장은 과거 협상 때마다 북한이 사용한 '살라미 전술'에 해당한다.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쪼개 단계마다 한·미의 양보와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초빙교수는 "과거 협상에서 북한이 보인 입장과 별 차이가 없다"며 "끝까지 핵무기는 갖고 있다가 제일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폐기를) 생각해 보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과거 협상 실패로 이끈 '살라미 전술'

28일 중국 측 발표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이 나의 노력에 선의(善意)로 답해 평화·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階段性) 동시(同步) 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단계적 동시 조치'란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을 때마다 상응하는 보상을 해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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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앞줄 왼쪽에서 둘째)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맨 왼쪽)가 지난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진써다팅(金色大廳)에서 열린 만찬에서 시진핑(앞줄 셋째) 중국 국가주석,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맨 오른쪽)과 건배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과거 협상에서도 북한은 비핵화 과정을 핵 포기 의사 표명, 미사일 모라토리엄, 핵 시설 동결, 핵 사찰, 핵 폐기 등으로 자세히 나눠 단계마다 경제 지원과 체제 보장 조치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긴 협상 끝에 합의가 이뤄져도 북한은 일정 단계를 이행해 보상만 받아내고 끝내 검증을 거부하며 협상 자체를 원점으로 돌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해결론'에 잘못 휘말리면 시간만 끌다가 결국 실패했던 과거 협상을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김정은이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언급한 '한·미의 선의'에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대북 제재 완화·해제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한·미의 '악의(惡意)'를 핑계로 비핵화를 거부하고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남·북·미·중의 '비핵화' 동상이몽
 
남·북·미·중의 북핵 해법 동상이몽
김정은의 이번 방중(訪中)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중의 동상이몽(同床異夢)도 드러났다. 모두가 '비핵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방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절대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과거의 실패한 협상'에 해당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도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을 원칙으로 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주장한다. 북한이 먼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란 원칙하에 핵을 폐기하면, 철저히 검증한 후 미·북 수교 등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단계적' 방식은 남북, 미·북, 남·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일괄 타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구상과도 다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4일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하나씩 푸는 방식이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나가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終戰)선언, 평화협정, 제재 완화 등을 한꺼번에 풀겠다는 취지였다.

김정은의 구상은 중국이 주장했던 '쌍중단'(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과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양측 발표문에 중국이 줄곧 원했던 '6자회담 재개' 언급이 없었다. 북한이 여전히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으며 북·중 간에도 구체적 핵 폐기 방법을 두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9/20180329002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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