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상호 교류·경제 협력 본격화
미·북, 일·북 수교도 해야

김정은 核 포기가 선결 조건
남북 적대 끝내고 통일로 가는 단 한 가지 합리적 방안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미·북 정상회담 소식이 세계를 강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외교로 한국 정부의 운신 폭도 넓어졌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미·북 대화는 예정된 절차였다.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제2의 한국전쟁은 관련 당사국 모두에 아마겟돈의 파국을 뜻한다. 남·북·미·중 모두 외교적 해법을 바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럼에도 한반도를 괴롭혀온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단칼에 잘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안갯속 한반도 상황을 돌파하려면 오히려 남북 2국 체제 모색이 급선무이다. '한반도 2국 체제'는 남북한이 별개 주권국가로서 엄존한다는 명백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남북이 이런 현실을 수용하고 정상 국가로서 수교해 상호 교류와 경제 협력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1년 9월 18일 유엔 동시 가입으로 별개 독립 주권국가임을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전체 회원국 159곳의 만장일치 승인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2국 체제론은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남과 북의 두 국가가 '결손(缺損) 국가'에 불과하다는 분단 체제론의 비판도 단호히 거부한다.

분명 남북통일은 고귀한 소망이다. 같은 민족끼리 잘 살아보자는 꿈은 엄청난 감성적 호소력을 지닌다. 그러나 낭만적 민족 통일론이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교훈은 역사의 비극적 아이러니이다. 6·25전쟁은 북한판(版) 민족 통일론을 북이 무력으로 강행한 결과 빚어진 대(大)참극이었다. 6·25 후에도 남북은 국력 경쟁에서 앞선 쪽이 공세적 통일 담론을 주도해 왔다. 1970년대 초까지는 북이 통일론을 이끌었고 남북의 국력이 역전된 뒤엔 한국이 통일론을 견인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목격했듯 핵이라는 절대무기를 쥔 북한이 남북통일을 앞장서 외치는 게 지금 상황이다.

평화 협상을 거쳐 상호 대등하게 통일한 분단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사의 통절한 교훈이다. 베트남은 무력 통일 되었으며 예멘은 평화 통일의 첫 단계가 무너진 후 무력 통일로 귀결되었다. 독일은 일방적 흡수 통일이었다. 남북통일의 이치도 하등 다르지 않다. 통일이란 이름 아래 한국 시민들이 자유와 풍요를 포기할 리 없다. 통일의 대의(大義)를 위해 김정은이 유일 권력을 내려놓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 공화정과 북한의 유일 체제를 동등하게 통합한 제3의 통일 국가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섣불리 통일하려는 시도가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무력 충돌과 전쟁을 부르게 될 필연적 이유이다.

한반도 2국 체제에서 남북은 다른 나라들과도 교차적 외교 관계를 맺게 된다. 한국이 북방 정책을 통해 중·러와 수교한 것처럼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도 필지할 사실이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교차 승인으로 남북 적대 관계를 끝내는 그림이다. 이 구도야말로 한반도 평화 체제의 본격 출범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통일에서가 아니라 굳건한 2국 체제의 정립에서 나온다. 한반도 2국 체제는 영구 분단으로 이어지기는커녕 궁극적 통일로 가는 단 한 가지 합리적 방안이다. 이는 우리가 정치적 상상력을 1세기 단위로 확장할 때 나오는 불가피한 결론이다.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 정치적 현실주의가 시금석이 되어야 마땅하다. 북한 핵과 중국의 존재는 한국의 북진 통일이나 흡수 통일을 불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민주 공화정과 주한 미군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막는 결정적 힘이다. 미국에 한반도는 중국과 벌이는 세계 주도권 경쟁의 최전선에 자리한 핵심 요충지이다. 그 군사적 교두보이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동맹국 한국을 '세계 제1 패권국 미국'이 포기할 전략적 이유는 전무하다. 따라서 언젠가 이루어질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의 전망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생각하는 게 대한민국 국익에 이롭다.

전쟁 불가피론자들은 대북 선제공격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임을 숙고해야 한다. 제2의 6·25가 한반도 전체를 파괴해도 남북통일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온 국토가 초 토화되었음에도 전전(戰前)의 분단 상태로 복귀한 6·25전쟁이 반면교사다. 한반도 2국 체제는 '전쟁 없는 한반도'로 가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그리고 김정은의 핵 포기 없이 남북 2국 체제는 성립 불가능하다. 지금은 차분히 한반도 2국 체제를 준비해야 할 때다. 모든 난제를 단칼에 풀 절대 보검(寶劍)은 없다. 정상회담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절제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5/20180315029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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