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입장 변화에 환영·경계 엇갈려… "韓, 운전대 잡고 過速 말아야"
"전쟁 위기감 감소는 성과" 아직 향후 기대감 갖기 힘들어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북한에서 돌아와 "북한이 미·북 대화와 비핵화에 용의가 있다"고 한 데 대해, 워싱턴은 '환영'과 '경계' 경보를 동시에 울리는 등 복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부터 "매우 긍정적"이라면서 "헛된 희망일 수 있다"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 관련 일을 했던 한반도 전문가는 "대화 제의가 '돌파구'인지 '덫'인지 잘 모르겠다"며 "51%의 기대와 49%의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워싱턴 내 강경파는 "북한을 못 믿겠다"는 쪽이고, 대화파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에서 '대화파'는 최근 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수 그룹이었다. 대화파로 분류되는 한 전문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북핵 문제가 불거진 후 20년 가까이 워싱턴에서 대화파는 겨울잠을 잤다"고 했다.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한창일 때도, 미·북이 갑자기 대화 국면으로 돌변할 가능성은 워싱턴에서 늘 거론돼 왔다. 하지만 '최대 압박과 관여'를 대북 정책의 큰 방향으로 설정한 워싱턴은 대화 국면에 휩쓸려 가기보다 "북한에 또 속는 것 아닌가" 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긴급 전화 브리핑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는 것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이 '군사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정이 보장된다면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한 데 대해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워싱턴의 아시아 소식지 '넬슨 리포트'에 "북한이 비핵화로 돌아선 게 아니라면 우리는 결말을 다 아는, 한 번 본 영화를 또 보게 생겼다"고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미국으로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특사단이 북한을 다녀오기 무섭게 워싱턴행 비행기에 오르자, 워싱턴의 한 한국통은 "한국이 운전대를 잡은 건 좋은데 과속(過速)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워싱턴에선 '한국식(式) 외교'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왔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가 사석에서 "미국에 전혀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코너에 몰아넣고 원하는 답을 받아내는 한국에 지쳤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워싱턴에서 대표적인 '대화파'로 꼽히는 전직 관리는 "한국이 과감하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위기감이 줄어든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미·북 대화가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 대화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됐던 빅터 차 교수가 낙마하고, 북한과의 채널을 맡았던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은퇴한 후 트럼프 행정부 내에 북한과 협상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거의 없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때 보여준 어색한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 작전'에 약하다는 걸 보여줬다.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대북 특사단 방북 등으로 남북 관계가 숨 가쁘게 달리는 동안 워싱턴은 군사 옵션과 제재 카드를 양손에 쥔 채 회의적인 시선으로 지켜봤다. 남북 관계가 핑크빛으로 물들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미국이 느끼는 안보 불안도 해결될까.

여기서 반 발짝 나갈 수 있다면 워싱턴의 경계심은 기대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망도 기대도, 지금은 너무 이르다는 게 워싱턴 분위기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8/20180308030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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