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정치부 기자
이용수 정치부 기자

"더 이상 평양 소식 없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지난 5일 밤 11시4분 청와대는 대북 특별 사절단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만찬 결과 브리핑을 취소했다. 밤늦게까지 청와대를 지키던 기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짐을 쌌다.

원래 청와대는 "밤늦게라도 브리핑을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만찬이 오후 6시 30분에 시작했으니 오후 10시쯤이면 관련 보고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도록 만찬 결과는 고사하고 만찬 종료 여부도 알 수 없었다. 특사단과 김정은이 무슨 논의를 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황'이었다.

온종일 청와대 입만 바라보는 일은 6일에도 반복됐다. 아침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이후 저녁 8시까지 언론은 아무것도 취재할 수 없었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 언론의 일방적 보도만 보고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이번 특사단 방북엔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비핵화 대화와 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담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의 동행 취재는 원천 봉쇄됐다. 1박 2일 방북 동안 평양에서 특사단이 보내는 팩스만 기다려야 했다. 청와대 발표 전에 북한 매체들이 제 입맛대로 선수(先手)를 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지난달 9~11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방한 당시와 비교해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북 대표단에는 북한 취재진이 동행해 김여정 일행을 밀착 취재했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단이 김여정 방한에 대한 '답방'이라고 했는데, '언론 동행 취재'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도 모든 일정을 비공개에 부쳤다. 김영철은 우리 당국자들과 다섯 차례 공식 접촉했지만 정부는 짤막한 사후(事後) 보도 자료만 냈다. 사진·영상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올 1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공연 시설 점검차 방한했을 때도 정부는 취재를 제한했다. 언론의 항의가 쏟아지자 뒤늦게 마지막 일정(국립극장 답사)만 딱 3분 공개했다.

정부는 연초부터 북한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으로 시작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총력을 쏟고 있다. 설익은 합의나 민감한 내용이 공개돼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언론 취재를 일부 제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같은 '깜깜이 방북'이나 '비밀주의'는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본다"거나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공개한다"는 지적을 낳을 수 있다. 국민 안위가 걸린 비핵화 대화와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정부가 김정은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국민은 속 시원하게 알 권리가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6/20180306029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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