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무기를 남측에 쓰지 않는다는 저들의 慈悲를 한국 특사단이 발표했다
편견, 당파, 비겁… 失報誤國은 옛말이 아니다
 

선우정 사회부장
선우정 사회부장
427년 전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通信使)만큼 한국사에서 오래 욕을 먹는 특사단이 없다. '실보오국(失報誤國)'이 가장 혹독한 평가인데, '잘못된 보고(報告)가 나라를 그르쳤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을 다루는 사극엔 빠짐없이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임금이 돌아온 사신들을 불러 물었다.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의견과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조정은 평화론을 지지했고 임금도 이를 택했다. 그러다 무방비로 일본에 당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쟁 가능성을 부인한 쪽이 죄인이 됐다. 특사단의 부사(副使)로 참여한 학봉(鶴峰) 김성일이다. 그에 대한 문책은 당대로 끝나지 않았다. 정세를 오판한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학봉은 유능한 학자이자 관료였다. 의병장으로 진주성을 지킨 말년의 맹활약에서 보듯 비겁과 거리 멀었다. 이 때문에 그의 오판은 한국사의 대표적 미스터리로 꼽힌다.

우리에겐 당시 일본은 지금 북한과 비슷했다. 정보가 거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 건 147년 만이다. 규슈 지역 영주들을 상대하다가 일본 중앙 정권의 새 실권자가 호전적이란 얘기만 듣고 갔다. 실권자의 본성이 소문보다 훨씬 호전적이란 것도 지금 북한과 비슷할지 모른다. 악명 높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훗날 일본은 얼굴이 험악한 도요토미 앞에 납작 엎드린 모습으로 특사단을 묘사했다. 사실이 아닌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특사단 접견은 치례(致禮)가 간소하고 자유로웠다. 도요토미가 어린 아들을 안고 있다가 오줌 세례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학봉은 이런 풍경을 '방약무인(傍若無人)'하다고 봤다. 상종 못 할 상것들이란 것이다. 그는 완고한 유학자였다. 게다가 예학을 중시했다. 중국 중심 세계관 탓에 현지에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무력을 '개돼지의 허장성세'로 표현했다. 똑같은 장면을 본 정사(正使) 황윤길은 도요토미에 대해 "눈이 반짝이고 담력과 지략이 있다"고 했다. 학봉은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워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그가 민심 동요를 우려해 본심과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학봉의 지성을 말해주는 것일 뿐 그의 보고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바꾸는 건 아니다. 편견은 이렇게 무섭다.

그들의 당파성도 나라의 운명을 비틀었다. 특사단이 일본으로 떠날 때 조선은 서인(西人) 집권기였다. 서인이 정사, 동인(東人)이 부사를 맡았다. 서인 권력이 이어졌다면 조선은 서인인 정사의 전쟁론을 택했을 것이다. 방어에 힘을 기울여 조금이라도 백성의 피해를 줄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1년 뒤 돌아왔을 때 조선은 정변이 일어나면서 동인 시대로 변했다. 동인인 부사의 평화론이 선택된 데엔 이런 당파성이 작용했다. 국가 운명을 당파의 이해에 내맡겼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인 임금이 전쟁을 두려워했으니 결국 그리로 갔을 것이다. 특사의 편견, 조정의 당파, 임금의 비겁이 어우러져 이듬해 왜선이 부산 앞바다를 꽉 메웠을 때 부산진을 지키는 장수는 영도에서 사냥 중이었다. 한국사는 중요한 순간에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도요토미는 '정명향도(征明嚮導)'를 요구했다. 명나라와 승부를 볼 테니 조선은 길 안내나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은 명과 협상해 조선 팔도 절반을 먹겠다는 '정한(征韓)'으로 목표를 바꾼다. 사실 원래 목표가 이랬다. 북한은 "우리 핵 주먹 안에 미국이 있다"며 큰소리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라며 한국에 손짓한다. '정미향도(征美嚮導)'를 떠드는 것이다. '정미'는 '정명' 못지않은 개꿈이다. 북한도 안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을 미국행 길잡이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핵 담판으로 미국을 묶고 그다음 한국을 먹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목표를 포기한 일이 없다.

어제 돌아온 특사단이 여섯 가지 남북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그중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다섯 번째 항목에서 비애(悲哀)를 느낀다. 길잡이를 잘하면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특사단은 비슷한 세계관·역사관의 공유자들이다. 북한에 대한 장밋빛 편견도 비슷하다. 김정은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명령을 받고 일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복명(復命)'이라고 한다. 대북 특사단의 복명은 옛 대일 특사단의 복명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어제 밝힌 그들의 복명은 학봉의 평화론보다 시대착오적이다. 특사단의 평화론에 솔깃하는 것도 그 옛날처럼 암울하다. 편견, 당파, 비겁. '실보오국(失報誤國)'은 옛말이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6/2018030602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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