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끝난 직후, 북한 응원단이 앉았던 200여 좌석엔 하얀 천가방이 놓여 있었다. 이 가방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관중의 보온과 응원을 위해 핫팩, 무릎 담요, 소고, 미니 성화봉 조명 등을 넣어 제공한 것이다. 거의 모든 관중이 기념으로 가져갔지만, 북한 응원단만 제자리에 두고 나갔다.

한국 물건은 일절 가지고 오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을 수 있고,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키려 한 행동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쨌든 이날 북한 응원단이 개회식장에 남겨놓고 가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2시간 동안 펼쳐진 개회식에서 그들이 목격한 '자유의 힘'이다.

개회식에 앞서 열린 남북한 합동 태권도 시범 공연 때만 해도 북한 응원단의 표정은 밝고 활기찼다. 관중석 상단부에 자리 잡은 이들은 인공기를 흔들며 북한 시범단을 향해 "힘내라, 힘내라, 우리 선수 장하다"를 외쳤다. 관중석의 시선과 카메라 플래시가 북한 응원단으로 집중됐다.

한국의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개회식이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의 대중가요와 최신 K팝이 울려 퍼진 선수단 입장 순서 때 관중석은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처럼 흥겨운 놀이터로 변했다. 3만5000여 명의 관중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레드벨벳의 '빨간 맛' 등에 맞춰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 북한 응원단원들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 응원단이 개막식 공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북에서 교육받았던 한국의 모습과 직접 눈으로 본 한국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평창에 온 자기네 선수들이 '한국의 자유'에 물들지 않도록 하려고 극도의 통제를 한다. 북한 선수단은 직접 가져온 장비로 휴식 시간에 북한 방송을 보고, 강릉선수촌 내부의 오락실(레크리에이션센터)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은 "북한 선수단 관계자들이 '평양엔 스마트폰이 없어서 신경 쓸 일이 없다' '평양은 인구가 적어서 서울보다 공기가 훨씬 좋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한국보다 경제 발전이 뒤처진 자기네 처지를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 게 대답하도록 사전(事前)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곳의 가족·친구·이웃들에게 자기들이 두 눈으로 봤던 한국의 자유로운 모습을 전하게 될지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어떤 통제나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낀 자유의 흔적까지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1/20180211018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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