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경쟁 상대는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前 대통령, 과거 정권이 라이벌일 수는 없다
오늘 평창서 文 대통령은 밖의 경쟁자들을 만난다
 

박정훈 논설위원
박정훈 논설위원
평창올림픽 보름 전, 스위스 다보스에서 '평창의 밤'이 열렸다. 외교부가 공들였다던 행사였다. 특급 호텔을 잡고 유명 피아니스트 공연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행사장은 썰렁했다. 한 시간이 되도록 참석 예상자의 절반도 오지 않았다. 이렇다 할 글로벌 기업인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빈자리를 한국서 온 정·재계 인사들이 채웠다. 사실상 우리끼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 직전 열린 마윈(馬雲) 중국 알리바바 회장 주최 만찬은 달랐다. 국왕·대통령·총리급이며 빌 게이츠 같은 거물급이 줄을 이었다. '평창의 밤'과 비교도 안 될 대성황이었다. 알리바바는 손님 끌려고 마윈까지 나서서 뛰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앉아서 기다렸다. 올림픽 개최국인데 초대장만 보내면 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외교적 나태가 국가 망신을 낳았다. 나라를 대표하는 정부가 민간 기업에도 뒤지는 수모를 당했다.

오늘 개막하는 평창올림픽에서도 한국 외교 상황은 심란하다. 각국의 정상급 참석자가 26명뿐이다. 4년 전 소치올림픽 때의 딱 절반이다. 정부가 북한에 정신 팔린 나머지 VIP 유치 외교에 소홀한 탓이다. 참석자 수만이 아니라 무대 자체가 북한 판으로 바뀌었다. 올림픽이 북한에 하이재킹(납치)당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림픽은 개최국이 주연을 맡는 다자(多者) 외교의 꽃이다. 우리가 따낸 우리 올림픽인데 북한이 주인 행세를 한다. 북한에 목을 매다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

이 정부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정부는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것이다. 정부라는 존재가 그렇게 편한 곳일 수는 없다. 나라 밖 곳곳에 정부의 경쟁자가 있다. 세계 모든 정부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국익 다툼을 벌인다. 다보스에선 알리바바가 정부의 라이벌이었다. 올림픽 외교에선 역대 개최지가 다 경쟁 상대일 것이다. 경쟁자들 하는 것을 보고 정신 번쩍 들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무역 보복이 유독 우리에게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대미(對美) 흑자가 10위에 불과한 나라다. 그런데도 세탁기·철강 등이 줄줄이 폭탄을 맞았다. 경쟁국들은 교묘하게 피해 가고 있다. 중국은 대미 흑자 1위지만 아직 큰 피해가 없다. 우리의 3배 흑자를 내는 일본도 멀쩡하다. 난데없이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 됐다.

왜 우리만 때리느냐고 분통 터트려서 될 일이 아니다. 모든 나라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상 공격을 방어한다. 중국은 강대국 파워를 활용한다. 미 국채(國債) 매각 같은 카드를 흘리며 전략 게임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달라붙었다. '애완견' 소리까지 들어가며 친미 노선을 치닫는다. 힘도 전략도 없는 우리만 동네북 신세다. 국력 약한 나라가 정부 전략마저 부실하다. 잘해 보려는 국가 의지도 부족하다. 이런 나라가 잘될 수는 없다.

세계가 일자리 풍년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 실업률은 17년 만의 최저다. 일손 부족한 기업들이 범죄 전과자까지 끌어 쓸 정도가 됐다. 중국의 구인 배율은 1.22배까지 올라갔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 1.22개가 대기한다는 뜻이다. 일본 역시 청년들이 직장을 골라가게 된 지 오래다. 한국만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 일자리 경쟁에서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다른 나라를 보는 청년들은 부럽다 못해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자초한 부분이 적지 않다. 대기업 법인세를 올린 것은 경쟁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국을 의식했다면 그런 결정은 내릴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며 탈원전도 쉽게 하지 못한다.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자해(自害)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 후퇴는 더더욱 못 했을 것이다. 경쟁을 의식하지 않으니 정부 마음대로 한다. 정책 역주행이 국익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 쇼핑하듯 국가를 고르는 시대다. 모든 나라 정부가 '선택'받기 위해 필사적이다. 경쟁국보다 더 좋은 조건을 내세우며 기업에 구애(求愛)한다. 세금 내리고, 규제 풀며, 노동 개혁하는 일로 각국이 경쟁하고 있다. 경쟁에서 지는 정부는 버림받는다. 더 잘하는 나라를 찾아 공장이 옮겨 가고 자본이 이탈한다. 일자리도 함께 빠져나간다. 어느 정부도 이 무서운 경쟁의 보복을 피하지 못한다.

많은 나라가 '세일즈맨 정부'의 길을 걷고 있다. 트럼프는 기업의 민원 해결사가 됐다. 아베는 기업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 한다. 이들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경쟁해야 할 상대일 것이다.

대통령의 라이벌은 나라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전직 대통령, 과거 정적(政敵)이 경쟁자일 순 없다. 오늘 밤 문 대통령은 평창의 호스트로서 각국에서 온 자신의 경쟁자들을 맞이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8/2018020803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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