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정치부 차장
임민혁 정치부 차장

미국 오바마 행정부 말기인 2015년 하반기부터 국무부에서는 2주에 한 번씩 대북(對北) 제재 회의가 열렸다. 토니 블링컨 부장관이 직접 지역 국장들을 모아놓고 세계 각국의 안보리 대북 제재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조직의 생리는 어디든 똑같다. '위'에서 의지를 강하게 보이면 '밑'에서는 어떻게든 결과물을 들고 온다. 실세(實勢) 부장관이 나서자 실무자들은 담당 지역을 뛰어다니며 제재 이행을 독려했다. 그러자 주요국은 물론 아프리카·중남미 등지에서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외교관·노동자 추방' '대북 교역 단절' 뉴스가 줄을 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사람과 형식은 바뀌었어도, 이런 회의는 계속 열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몽골이 북한 노동자 1000명 추방을 발표했고, 앙골라는 북한 건설회사 '만수대'와 계약을 해지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동참한 국가 수만 보면 국제사회의 제재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대북 제재 국제 공조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래 봤자 숨통을 끊을 수 없다"는 회의론도 많다. '중국'이라는 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잔금 몇십 개 메운다고 물이 새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교역량 중 93%를 차지한다.

압록강 강가 중국 쪽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모습. /뉴시스

하지만 효과는 더뎌도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참 국가가 늘고 공조가 지속되면서 중국도 '나 홀로 북한편'을 고수하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너무 커졌다. '글로벌 리더'를 자부하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세'를 언제까지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중국이 최근 부분적이나마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큰 변화다.

북한 김정은이 최근 '평화·대화 공세'에 나선 것은 이런 제재의 연쇄효과로 봐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제재의 영향으로 올해 북한의 수출이 2016년 대비 1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거꾸로 보면 북한의 노림수도 명확하다. 남북 대화에 집착하는 문재인 정부를 먼저 국제 공조에서 이탈시키고, 이를 통해 중국에도 채찍을 거둘 명분을 주겠다는 것이다. 북핵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앞장서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를 하면, 중국이 "우리한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할 때 미국도 할 말이 없어진다. 제3국들의 제재도 빠르게 흐지부지될 것이다. 수년간 어렵게 쌓아온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평창에서 시작된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은 좋다. 그러나 최종 목표가 북한 비핵화라면 제재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아쉬운 쪽이 더 많이 물러서는 건 협상의 기본이다. 지금 그 기본을 한층 더 되새겨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4/20180204015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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