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삼지연관현악단 현송월 단장 일행이 서울역에 도착할 무렵인 지난 22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한 사람들이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인공기와 한반도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을 불태웠다. 집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제지하고 소화기로 불을 껐다.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대화하고 협상해야 하는 현실적 실체인 이상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무엇을 불태우는 식의 자극적이고 과격한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이에 대한 경찰의 조치가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 집회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반미(反美)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하는 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트럼프 얼굴 모형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렸다. 경찰은 당시에는 신고한 집회라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두 사건 문제의 본질은 국기를 불태운 것으로 같은데 지엽적인 집회 신고 여부로 하나만 수사한다는 것은 공정을 가장한 이중 잣대 아닌가.

정부가 모처럼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북핵 해결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적 독재국가인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겨우 이어가는 남북 대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하겠나. 언론 자유를 말살한 북한이 한국의 언론 자유까지 통제하고 윽박지르려 하고 우리 정부는 몸을 낮추고 북한의 심기를 살피며 하는 남북 대화가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북핵 문제로 넘어갈 수 있나. 지금 정부 태도로는 북핵 문제를 제대로 꺼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찰이 신속하게 인공기 소각 집회 수사 방침을 공개하고 나선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한가. 북 당국은 23일 "신성한 존엄을 모독한 천추에 용납 못 할 범죄"라며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행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협박했다. 우리 정부 태도를 주시하겠다고도 했다. 북의 위세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3/20180123032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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