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핵경쟁이 절정이던 1983년 9월 26일 모스크바 외곽 핵전쟁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다섯 기를 발사했다는 경보가 울린 것이다. 당직 장교는 즉각 "컴퓨터 오류로 여겨진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몇 시간 뒤 소련 첩보위성이 햇빛 반사 현상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직 장교였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미·소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핵전쟁을 시작한 것이라면 미사일을 다섯 발만 쏘지는 않았을 걸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작년 9월 77세로 사망한 페트로프는 우발적 핵전쟁에서 세계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3일 아침 미국 하와이 섬 전체가 40분간 공포 속에 빠져들었다. 느닷없이 '탄도미사일 위협 경보'가 발령된 것이다. 주민과 관광객들은 곧바로 대피소로 몰려들었고,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 차를 세우고 인근 터널로 대피했다. 겁먹고 울음을 터트리는 주민들도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주정부 비상관리국 직원이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다 버튼을 잘못 눌러 빚어진 오경보로 드러났다.

▶하와이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미국 주(州)다. 북의 핵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하와이 방면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9년이다. 같은 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하와이에 배치됐다.

▶북한이 미국 동부 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하자 하와이는 지난달 1일 핵미사일 공격을 가상한 대피 훈련을 실시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5형이 하와이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섬 부근 바다에서 터져도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와이 주지사는 오경보 발령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혼란을 겪고 난 주민들은 의외로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하와이는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을 겪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오경보로 공포와 불편을 겪었지만 아예 훈련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하와이 주민들 은 핵 미사일 경보가 울리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피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일본도 하와이처럼 북 미사일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했다. 그런데 북 지척에 있는 우리만 훈련을 하지 않는다. 훈련을 하면 위기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설마 공화국'인 우리 사회에서 하와이 같은 오경보가 발령됐다고 상상해본다. 대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4/2018011401585.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