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항쟁 이끌었던 주역들 現정부 들어간 뒤 '우월감' 표출
판사의 욕설도 '도덕 쟁탈戰'
실용 강조할수록 공동체는 富强… 도덕보다는 현재의 사실 따져야
 

이한수 문화1부 차장
이한수 문화1부 차장
대학 한 해 선배 A는 강의실 책상 위에 '미제 축출, 파쇼 타도'라고 썼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미국을 일컫던 '미제(미 제국주의)'는 흔히 한자로 '米帝'라 썼는데 A 선배는 '꼬리 미(尾)' 자를 써 투쟁성을 과시했다.

그는 이후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내고 지금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대통령을 보좌 중이다. 동기 B는 '키스(KIS)'에 대해 은밀히 얘기했다. 'KIS'는 북한 김일성의 영문 이니셜이다. B는 언더서클에서 접한 주체사상에 빠져 있었다. 둘 모두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주역이다. 구속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 시청 앞에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30년 지난 지금까지 '尾帝(미제)'나 'KIS(키스)'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만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을 터이다. 하지만 독재 정권과 싸우고 민주화에 몸 던졌다는 '도덕적 우월 의식'은 더 강해진 듯하다. 같은 세대인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정감사에서 말한 답변에서 금세 눈치챘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이 반미(反美)·주사파(主思派)를 거론하며 "전대협 출신 운동권 여러 명이 청와대에 있다"고 하자, 임 실장은 "5·6공화국 때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지 않았지만, 거론한 사람들은 인생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2017년 11월 6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 실장 왼쪽은 장하성 정책실장. /조선일보 DB
'너희'보다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현 정부 인사의 저류(底流)에는 도덕적 우월 의식이 흐르고 있다.

때로는 남이 우리를 더 잘 아는 법이다. 일본 학자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로 규정한다. 실제 삶이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해 평가한다는 뜻이다. 오구라 교수는 최근 번역된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 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富)도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믿고 있었다"며 "(지금도) 한국 사회는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극장"이라고 썼다.

판결로 말해야 할 판사가 익명에 숨어 동료를 청산 대상으로 지목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태 역시 도덕 쟁탈전의 한 단면이다. 자신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믿지 않는 한 동료에게 그럴 순 없다. 도덕 우위를 선점하고 상대를 악(惡)으로 규정해야 권력이 따라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도덕을 강조하면 나라가 건전할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실용을 강조하는 시대일 때 공동체는 더 건강하고 부유했다. 실용을 높이 여긴 세종 시대는 번영했지만 도덕을 권력 명분으로 삼은 조선 중기 이후 나라는 쇠락했다. 도덕의 준거를 일[事]에 두지 않고 도덕 우위를 내세워 권력을 차지하려 할 때 공동체는 몰락한다. 그릇 만드는 장인(匠人)의 도덕은 그릇을 잘 만드는 일일 뿐이다. 판사의 도덕은 법과 양심에 따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판결하는 일이다. 정치인의 도덕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에게 미래 비전을 보이는 일이다.

1987년 6월 시청 앞에는 평범한 대학생 C도 D도 있었다. 예전의 도덕 우위를 명분 삼아 권력을 쥔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평범하게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반미·주사파인지 묻는 질문에는 과거의 도덕 말고 현재의 사실을 말하면 된다. 판사는 '누구의 따까리' 같은 욕설 말고 정확한 판결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도덕의 정치로는 정치의 도덕을 이룰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9/2018010903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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