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미국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 정신 건강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한 유력 언론인은 "트럼프는 사소한 문제로 직원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후 다른 부탁을 하기 위해 1분 뒤에 웃는 얼굴로 가족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가짜 뉴스 매체"라고 비난하면서도 두 회사의 출입 기자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직접 전화를 걸어 입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 언제든 적(敵)과 동침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대북 정책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 트위터에 '한국은 대북 유화책이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깨닫고 있다'고 했었고, 10월엔 북한과 대화를 주장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트윗으로 '시간 낭비'라고 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당장 통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나는 늘 대화를 믿는다"며 "틀림없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전혀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또 '김정은과의 대화에 전제조건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고 덧붙여 김 위원장과의 통화 등 직접 대화 의향이 '무조건 대화'를 뜻하는 게 아니라 '비핵화 대화'가 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AP 연합뉴스

그랬던 그가 이달 6일(현지 시각)엔 "남북 대화를 100% 지지한다. 북한 김정은과 통화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도자가 몇 달 새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한·미 간 남북 대화 관련 정책 협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 남북 대화에 대해 국무부와 백악관은 "대화 주제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와 남북 현안에 국한될 것"이라고 공식 설명한다. 그러나 한 외교 소식통은 "실제 미측과 마주 앉으면 대화 주제를 제한하라는 얘기는 전혀 없다"며 "오히려 남북의 모든 대화 내용을 자신들과 공유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겉 발언'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북 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한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이어서 전형적인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란 성향"이라며 "평창올림픽이란 지렛대를 사용하기 위해 지금은 대화파의 손을 들어줬지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강경파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했다. 마치 사장이 매출 확대란 목표만 주고 A팀과 B팀을 경쟁시키듯 트럼프는 대화파와 강경파가 들고 오는 결과물을 들고 판단할 것이란 분석이다.

청와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을 대화의 창구로 끌어들였고,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까지 받아냈다고 환호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란 목표에 집중할 뿐 수단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냉혈한(冷血漢)이다. 오히려 청와대의 대화 시도가 평화 정착은커녕 미국의 군사행동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진짜 평화를 원한다면 긴 안목으로 냉정하고 철저하게 상황 관리를 하는 게 훨씬 더 긴요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8/201801080252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