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에 응하면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시작되게 됐다. 북은 5일 전통문에서 평창올림픽 문제뿐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 문제를 의제로 삼겠다고 했다. 남북 관계 개선이라면 정치·경제적인 문제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북이 이산가족 상봉 등을 미끼로 던지면서 한·미 훈련 전면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중단,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것으로 한·미 이간을 본격화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는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측 선수들 경비를 대주는 것도 유엔 제재 위반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 대북 제재에 한 치라도 틈이 생기면 압박이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위기감일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와 관계없이 북핵 폐기가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대북 제재에 조금이라도 이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이와 같은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선 엇갈린 신호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4일 전화 통화에 대한 청와대와 백악관 발표 내용은 같지 않았다. 청와대는 한·미 훈련 연기,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대화 지지 표명을 앞세웠다. 그러나 백악관 발표문은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계속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가 첫 번째였다. 우리 발표엔 아예 없는 내용이다. 연합 훈련에 대해서도 백악관은 '연기' 대신 '올림픽과 훈련의 충돌 회피(deconflict)'라고 썼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 않는다'는 부분은 적당히 넘길 내용이 아니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서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이 이 부분이다. 과거처럼 '제재→대화→도발'의 악순환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 않는다'는 말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강조하고 다짐받아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거꾸로이고, 그나마 청와대는 이런 대화 자체를 숨기고 있다.

청와대가 정상 대화 내용을 입맛에 맞게 '편집'해 발표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작년 9월 1일 한·미 정상 통화 때는 청와대가 "두 정상은 대화와 평화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재확인했다"고 했지만 백악관에선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는 말이 나왔다. 한·중 정상회담 때 사드 문제를 놓고도 정작 중요한 내용은 청와대 발표에 빠져 있었다.

한·미 정상 통화 후 양측의 발표 차이엔 일정한 경향성이 보인다. 백악관 발표는 꾸준히 북한 위협과 그에 대한 제재·압박을 강조한다. 반면 청와대는 이런 부분은 줄이거나 빼고 대화 부분을 넣어서 발표한다. 반복되면 "양국 대통령이 100% 통하고 있다"는 말은 수사(修辭)로 보일 뿐이다.

그런 한편으로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노인회 간부들과 만나 "저는 과거처럼 유약하게 (남북)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핵 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것이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를 바란다. 그런 의지라면 '북핵 폐기 없는 남북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자명한 진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5/20180105027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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