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밀착과 남북 접촉에 美 의구심 커지고 있어
한국 안보 지킬 대안 없는데 동맹 공감대 급격히 줄어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한·미 외교 당국자들이 갑자기 동맹의 긴밀함을 부쩍 강조하면 일단 '경계경보'로 들어야 한다. 김정은의 신년사 평화 공세 이후 북한에 대해 느끼는 한·미 간의 온도 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

여전히 북핵 해결을 위한 군사적 방안을 만지작거리는 트럼프 행정부 분위기가 기록적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미국 동부 날씨라면, 북한 유화 공세에 들뜬 한국 정부는 이상 기온으로 달아오른 봄날을 즐기는 것 같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 표시와 판문점 연락 채널 개통에 환호하며 남북 고위급 만남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는 동안, 워싱턴 사람들은 김정일 핵 버튼과 트럼프 핵 버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에 대한 농담으로 하루를 보냈다. 트위터엔 '북한이 신년사에서 한국과 잘해보자는 것은 '고정 메뉴' 아니냐'고 지적한 트윗이 올라왔다. '유화 공세는 한미 동맹 이간질'이란 경고가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흥분해버린 한국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한국만 '코리아 패싱'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한국을 희생한 미·중 간 대타협 가능성을 걱정하고 한국을 배제한 미·북 대화가 비밀리에 열릴 가능성을 우려하듯, 미국도 미국을 배제한 한·중 밀착과 남북 간 접촉을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혈맹이라는 한·미 간의 신뢰 자본은 의외로 빈약하다.

작년 가을 워싱턴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비공개 토론의 한 장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한 미국 교수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핵우산과 확장 억제로 안보 공약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가?" 하고 물었다. 한·미 양국 반반(半半)인 참석자 중 '믿는다'고 손을 든 쪽은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미국을 잘 안다는 한국 학자들인데도 대부분 미국의 안보 공약에 깊은 신뢰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1월 7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서 미국식 신파가 나온다. "우리가 한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데 당신들은 왜 우리를 못 믿느냐"고들 한다. 한국에서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도입이 거론될 때마다 워싱턴에선 "한국이 미국을 못 믿어서 이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졌다.

동맹의 공감대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워싱턴 사람들 눈에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아시아 전략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한다. 한국이 중국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화해를 하며 밝힌 '3불(不)'을 통해 이미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계와 한·미·일 군사 동맹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사이가 벌어지면서 미·일 밀착에 가세할 가능성도 없어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는 미국의 '인도·퍼시픽' 구상에도 참여할 뜻이 없다.

그나마 발맞춰왔던 북핵 대응에서도 한국은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원칙에서 수시로 이탈하려 했다. 그때마다 미국 반응은 "한국에 물어보라"였다. 지난여름 한국이 남북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인도적 대북 지원 계획을 들고나왔을 때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오로지 미국민과 미국 국익만 챙기겠다며 '미국 우선주의' 깃발을 높이 든 미국과, 미국의 아시아 구상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없는 한국의 동맹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북한의 평화 공세에 당장 축제를 벌일 기세인 한국은 '한미 동맹 이간질 경계령'을 내리고 군사 옵션을 만지작거리는 트럼프 정부와는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진실의 순간이 온 것일까. 트럼프 정부는 아마 "한국에 물어보라"고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으로선 한미 동맹 외에 한국 안보를 지켜줄 어떤 대안도 없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4/20180104031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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