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뮈스 '어리석음 예찬'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더 디플로맷'이라는 미국 잡지가 지난 연말을 맞아 동양 정상들의 한 해 실적을 평가해서 '시상'을 했다(별명을 붙여 줬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아온 상(賞)은 'balancing act award'이다. 이 수상 소식을 접한 청와대가 기뻐서 온 국민에게 자랑을 했다. 문 대통령이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는데 균형을 잘 잡았다고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balancing act'는 다른 나라 또는 개인 간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행위가 아니고 외줄 타기 묘기(妙技)처럼 자기가 균형을 잃고 추락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행위, 또는 연기이다.

'더 디플로맷'지가 보기에 문 대통령의 행보가 무척 위태로워 보였고 사방에서 오는 상이한 압력 속에서 제대로 서 있기도 퍽이나 힘 드는 것같이 보였던 모양이다. 문 대통령이 하고 싶다는 '균형자론'을 우리 외무부가 어떻게 번역해서 알렸는지 모르겠으나, 자기가 고공(高空)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사람은 주변 세력들 간의 균형을 잡아 줄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2017년 올해의 의인'으로 선정된 시민들과 함께 북한산 사모바위 등반을 마치고 임종석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며 하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의 늘 웃는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은 놀랍고 신기하다. 국제경제환경은 좋다지만 그가 선언한 허다한 정책들이 재앙 수준의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 안보가 위기 수준인데 그가 그토록 간절히 러브콜을 보내는 북한은 대부분 무시하거나 오히려 욕설 등으로 응수하고, 달려가 도움을 애원한 중국에서는 국민이 격노할 만한 모욕을 당했는데도 그의 얼굴은 늘 봄날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대학자 에라스뮈스는 그의 저서 '어리석음 예찬'에서 아부는 남을 잘 믿는 사람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해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웃는 얼굴도 처음엔 우울하고 성난 얼굴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가 자신이 국민의 생존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국가의 경제가 붕괴하고 있는지 , 그의 '적폐 청산'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지, 자각을 못 하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마도 주위에서 아낌없는 칭송을 쉴 새 없이 받고 있어서 늘 기분이 좋기 때문일까?

'더 디플로맷'지의 보도조차 상찬(賞讚)으로 받아들였다면 국민은 앞으로 나라의 형편이 어떻든 대통령의 얼굴에서만은 화창한 봄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1/20180101016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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