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불거지는 이상 징후가 심상찮다. 청와대는 11일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계기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로 양국이 '결합한 입장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중 양국은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첫해 국빈(國賓) 방중 당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후 역대 모든 대통령이 이를 모델로 '첫해 국빈 방중→공동성명 발표' 를 관례로 삼아왔다.

정부는 10·31 한·중 사드 합의로 사드 문제가 '봉인'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생각과 의도를 우리 희망대로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를 안 하며, 미국 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3국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3불(不)'을 경솔하게 표명함으로써 중국이 우리 주권에 개입할 수 있는 대문(大門)을 열어주고 말았다. 중국은 그 후 '3불'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마치 스토킹하듯이 물고 늘어지고 있다. 정부는 외교장관이 국회 답변 형식으로 '3불'을 밝히면 적당히 넘어갈 줄 알았다.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불발됐다는 것은 회담 의제가 확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시진핑 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3불'에 대한 한국의 구체적 약속이나 추가 행동을 거칠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1인 독재 수준으로 권력을 강화한 시 주석은 한국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외교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시진핑이 공세를 펴고 문 대통령이 수세에 몰린다면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지금 최대 현안은 북핵 사태다. 사드도 북핵 때문에 생긴 문제다. 북핵을 막지 못하는 것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생명 줄이 돼주고 있고, 심지어는 미사일 부품까지 중국에서 북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구체적 증거가 나오고 있다. 문제를 제기해야 할 쪽은 문 대통령이지 시 주석이 아니다. 시 주석이 한국을 몰아붙인다면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힘에 기반한 대국(大國)주의일 뿐이다.

일단은 한·중 정상회담의 의제를 확정해 회담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불상사를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3불'을 포함해 중국이 한국 주권에 개입하고 한국을 길들이려는 시대착오적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우리 입장을 밝혀야 한다. 북핵 위기와 평창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의 협조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권을 지키 는 것은 그 이상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가 중국 편향이라고 의심하는데 중국은 과도한 요구를 그치지 않는다. 한·미, 한·중 관계 모두 정상이 아니다. 한·일 관계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와 국방부는 기본적 소통도 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미 동맹의 바탕에서 원칙을 지킨다'는 중심을 다잡지 않으면 큰 사태를 만날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1/20171211030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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