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일 CNN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11·29 미사일 도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언급한 기술적 문제를 거론하며 북의 ICBM 기술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CNN 앵커가 "모두가 (위험한 상황만 회피하려)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했다. 맹수에게 쫓기는 타조가 머리만 모래에 박고서 이제 안전해졌다고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반박이다.

CNN 앵커의 '타조' 발언은 상대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북핵의 현실을 축소하고 회피하려는 한국 정부를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의 ICBM을 막을 시한이 불과 3개월이라고 보고했다는 리포트도 나왔다. 북 ICBM 완성이 코앞에 왔다고 보는 미국의 조야(朝野)가 '북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하는 한국 정부를 향해 어떤 생각을 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북한과 인접한 중국 지린(吉林)성 기관지가 북핵 사태 발생 시 대응 요령 등을 한 면에 걸쳐 보도하고, 이 보도가 파문을 일으키자 관영 환구시보는 "북한의 1차 공격 대상은 한국이니 걱정 말라"는 사설을 실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6일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는 북·미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국은 한국이 공격 대상이라는데 우리 대통령은 이를 미·북 문제라고 한다.

지금 이대로면 북의 핵ICBM 완성을 막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 후 미국은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군사 공격을 하든지 아니면 자세를 180도 전환해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 후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지금 미국은 '북핵을 인정하는 협상은 없다'고 하지만,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미·북 대화가 시작된다면 이는 북 핵 무장 전략의 완성을 뜻하는 대화다. 그러면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북핵이 인정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사태가 현실화됐을 때 한국 정부가 환영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미 정부와 여권에서는 북의 핵 무장 완성 주장을 남북 대화 재개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도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말로 남북 대화 기대를 나타냈다. 문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하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7일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북·미 관계 견인'을 제안했고, 이해찬 의원은 남북 정상 회담 개최를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의 완성이라는 재앙(災殃)을 외면하고 북 집단과 '평화 대화'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김정은의 전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북 제재는 흐지부지되고 우리 머리 위의 핵폭탄은 마치 없는 듯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길로 가게 된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7/2017120703286.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