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는 北 위협에 무장해제하는 것
외국은 정보기관 통합·확대…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어
 

송봉선 양지회장
송봉선 양지회장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외무성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10년 전, 일본 경찰청엔 전국에서 의문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흔한 실종 사건으로 보았고 외무성은 한국 정보 당국이 일·북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흘리는 거짓 정보라고 여겼다. 치안과 대공 정보를 통합할 당국자가 있었다면 일본은 10년 이상 일찍 북한에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해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반성에서 일본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정보기관의 통합·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시청 공안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방위성 정보본부, 법무성 공안조사청으로 흩어진 조직을 통솔하는 정보기관을 만들어 국가 안보 총괄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직결시키자는 것이다. 2013년 NSC를 신설했고 지금은 각 조직을 연결하는 기존 내각조사실의 규모를 확대하고 권한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납치, 핵무기, 미사일 등 북한의 위협이 일본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9일 대공 수사권 폐지를 공식화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건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 공약, 2013년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혁추진위원회가 대공 수사권을 포함한 수사 기능을 경찰·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으로 전면 이관하고 '통일해외정보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자고 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정보기관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최근의 각국 정보기관들은 정보의 수집·분석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곳곳에 산재한 정보 수사 기능을 통합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2008년 국내 정보기관(DST)과 경찰정보국(RC)을 프랑스 정보부(DCRI)로 통합했다. 또한 이스라엘 신베스(GSS), 러시아 정보부(FSB), 중국 안전부(MSS) 등 정보기관들은 모두 방첩(防諜) 수사권을 갖고 있다. 하물며 북한의 체제 파괴 위협에 맞서 싸우는 우리 처지에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이석기류(類)의 국가 전복 공작을 간과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이 11월29일 국정원법의 연내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마련한 국정원법 개정안에는 기관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며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모든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정원 모습. /연합뉴스
국정원이 이런 추세에 역행해 수사권을 폐지하고 분리할 경우 총리실, 법무부, 검찰·경찰 등으로 이관하든가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역량과 시간이 소모된다. 간첩망 검거는 수사기관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필자는 카이로 공관 근무 때 무하마드 깐수 간첩 행적 채증에 동원돼 그가 유학생으로 신분 세탁했던 카이로대학의 1950년대 말 학적부를 이집트 보안총국(SS) 협조로 찾아낸 적이 있다. 또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검거될 당시 중동에 주재하는 국정원 주재관들은 항공기 탑승자 명단 확보, 경유국 기관 협조, 독극물 확보 등을 위해 바레인에 총동원됐다.

갈수록 지능화, 과학화, 첨단화하는 북한의 대남사업부에 대응하려면 국내외 수집망과 각종 통신망, 인터넷, 과학 장비, 대북 공작 휴민트망의 종합적 협조 지원이 절대적이다. 이를 갖춘 기관은 국정원뿐이다. 수사 기능만 있는 새로운 대공 수사기관이 특정 간첩의 해외 물증을 찾는다고 가정할 경우 해외 공관이나 국정원의 협조를 구해야 하겠지만 이 경우 기관 간 협조나 보안이 유지될지도 우려된다.

최근 북한의 대남 간첩망은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원격 조종되고 있다. 사이버, 인터넷망을 통해 첨단 침투 활동을 한다. 북한이 이를 통해 보안 시설 해킹, 금융 전산망 교란, 정치권 침투, 국방 전산망 침투, 사이버 테러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 을 수시로 하는 상황에서 대공 수사 활동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 보호를 위한 필수 사안이다. 통치자가 정권 안보에 국정원을 이용했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국정원은 이런 과오를 인정하고 혁신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국정원의 일부 일탈을 물어 성급하게 대공 수사권을 폐지·이관한다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4/20171204030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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