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했다. 북이 75일간 도발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 내에선 대화 기대감이 일었으나 헛된 생각이었음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연합 훈련을 일시 중단하자는 검토도 했다는데 일방적 기대였을 뿐이다. 북은 누가 뭐라든 핵 무력 완성이라는 자신들 시간표대로 갈 뿐이다. 그때까지 한국 정부의 제안이나 구상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북핵 레드라인에 대해 '핵 ICBM의 완성'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이 선을 넘으면 군사 조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날 미·일은 모두 ICBM이라고 명확히 했는데 한국 정부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ICBM급'이라고 했다. 북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하면 미국이 군사 조치에 나설까 봐 말을 돌리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북의 도발은 막을 수 없으니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북이 마음 놓고 도발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대통령은 북의 위협은 공개 규탄하되 미국의 대응 문제는 비공개 논의해야 한다.

외교적 방법은 실패했고 군사 조치는 한국이 반대한다면 북핵 문제는 두 가지 길만 남는다. 북핵 존재를 부인하면서 끝까지 제재와 압박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제재하면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이 그런 일관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알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북핵을 인정하는 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다. 북한은 이날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됐다"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이 앞으로 핵보유국 행세를 하면서 대화 모드로 국면 전환에 나설 예고편과 같은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생각만 바뀌면 국면은 급작스럽게 바뀐다. 북이 더 이상의 핵실험과 ICBM 발사 중단을 조건으로 대북 제재 해제와 주한 미군 철수를 들고나올 수 있다. 김정은의 이른바 '핵을 가 진 평화 공세'는 우리 사회의 좌파 세력과 연계돼 심각한 남남 분열을 일으킬지 모른다.

북이 목표로 하는 '결정적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몇 달도 남지 않았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최악의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미국이 보장한다는 핵우산 외에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전략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9/2017112903509.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