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이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접근 태도를 완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30일 '미국은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같은 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지난 94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경수로 건설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며 북한 지도부의 교체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일본인 납치 의혹 해소와 별도로 북일 수교 교섭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얼마전까지 북한의 핵 사찰을 요구하며 경수로 건설 중단을 경고했고 일본은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북한과의 수교 협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ㆍ일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지난달 뉴욕에서 있었던 일련의 북ㆍ미 접촉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잭 프리처드 대북교섭담당 대사는 지난달 13일과 20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박길연(朴吉淵) 대사를 만나 북ㆍ미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한 끝에 북한으로부터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국이 이처럼 대북 접근 태도를 변화시킨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대북 대화 재개 의사를 표시했으나 북한은 줄곧 미국에 대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를 요구하며 대화를 거부해 왔고 올들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1.29) 발언이 나오면서 대미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미티지 부장관의 '체제 인정' 발언이나 미 백악관 대변인의 대화 재개 성명만으로 북측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미국이 뉴욕 접촉에서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미티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올해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느냐'는 질문에 '두고 봐야 한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미국은 매년 5월1일 테러지원국 명단을 발표해 오고 있으며 매년 3∼4월이면 이 명단에 올려질 나라 이름들이 거론되는 것이 상례였으나 올해는 북한 등에 대한 테러지원국 거론이 공식적으로는 일절 없다.

또 올해들어 괴선박 사건과 일본인 납치 의혹 사건을 잇따라 발표하며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던 일본이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아직 미국이 북한에 어떤 카드를 제시했는지 확실하지 않아 앞으로 양국 관계가 기대만큼 순조롭게 풀릴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90년대에 한.미.일 3국이 동시에 대북 수교협상에 나서면서 한때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는 듯 했으나 미국의 정권교체 등으로 인해 상황이 돌변, 원점으로 회귀한 전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대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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