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섭 국제부 기자
정지섭 국제부 기자

남아프리카 보츠와나가 국내에서 주목받은 건 2014년 2월이었다. 이 나라 이안 카마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유린을 문제 삼아 전격 단교를 결정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보츠와나가 아프리카의 민주주의·시장경제 선도 국가로 손꼽힌다는 점, 카마가 자국에서 국민적 지지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느닷없다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그때 북한은 주로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 비난을 받았지, 지금처럼 핵·미사일로 지구촌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지는 않았다. 인권 문제 제기는 서방국 전유물로 인식됐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북한의 오랜 유대 관계를 감안하면 단교가 번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보츠와나의 대북 단교 조치가 올해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을 계기로 재조명받고 있다. 미국 주도로 각국이 공관 폐쇄, 교역 중단 등으로 북한을 고립시키면서 보츠와나를 뒤따른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아프리카 외무장관 30여 명을 워싱턴으로 불러 "북한과 관계를 끊으라"고 했을 때 보츠와나는 완벽한 본보기였다.
이안 카마(오른쪽) 보츠와나 대통령은 2014년 3월13일 "북한의 인권 탄압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인구 200만명인 보츠와나는 2월 북한의 인권 실태를 규탄하며 단교(斷交)를 선언했다. 사진은 카마 대통령이 2011년 지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모습. /이안 카마 페이스북
이안 카마 대통령의 안목은 국경을 맞댄 이웃 짐바브웨에서 쿠데타로 무가베가 물러나면서 또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무가베가 막강 권력을 휘두르던 지난해부터 공개적으로 "무가베는 퇴진하라"고 주장해왔다. 지난 15일 군사 쿠데타로 그가 가택 연금되자 카마의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21일에는 공개서한까지 발표했다.

'짐바브웨 국민은 당신이 이끄는 형편없는 정부에서 오랫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명예롭게 물러나시길 거듭 청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서한이 공개된 날 무가베가 물러났다. 쓴소리를 멈추지 않아 온 이웃 나라 지도자가 무가베의 진퇴를 직접 결정하진 못해도 부담은 됐을 것이다.

사흘 뒤인 24일 새 정부 출범식이 열린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 국립 경기장을 채운 6만 군중은 에머슨 음난가그와 신임 대통령 못지않게 손님으로 온 카마 대통령에게도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두 사람이 여러 차례 대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향후 카마가 짐바브웨 새 정부의 조언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예견되는 장면이었다. 짐바브웨와 보츠와나는 옛 영국 식민지이자 자원 부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협력할 여지가 크다.

이날 두 사람의 밀담 장면을 보는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들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북한 외교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다른 대륙보다 고립이 덜한 전략 지역이다. 무가베도 집권 중 친북 노선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안 카마의 조언이 짐바브웨 새 정부의 대외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안 그래도 고전 중인 북한의 아프리카 외교는 더욱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임기 종료(2018년 3월)를 넉 달 앞둔 카마는 "퇴임 후에도 내가 필요한 분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공언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북한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8/20171128037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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