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옥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의 '구속 前夜' 육성 토로]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는데… 우파정권선 '햇볕론자'로 몰고
좌파정권선 '적폐 세력' 찍혀… 꿈꾸는 것처럼 현실 같지 않아"

"민간인으로 구성된 TF팀이 적폐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정보·기밀 문건 저장된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열어"
 

지난 토요일 새벽 유성옥(60)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구속됐다. '국정원 적폐 청산' 대상 중 한 명으로 찍힌 것이다.

하지만 그를 조금만 알아도 지금 그가 겪고 있는 곤경(困境)은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영장 심사가 있기 바로 전날 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양심을 걸고 하늘에 부끄러움없이 일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난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 같지가 않습니다."

그는 1986년 국정원 공채에서 수석 합격해, 당시 기피 부서로 분류됐던 대북 업무에 자원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23년간 대북 분야에서 일했다. 남북장관급회담, 북핵 6자회담, 1·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막후 실무 역할을 맡았고. 8차례나 방북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합의문의 초안(草案)을 직접 작성했다.

그런 최고의 대북 전문가가 현 정권의 '국정원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팀'에 의해 찍혔다. 그가 국정원 심리전단장 재직 시 사이버 댓글 팀 구성과 보수단체의 관제(官製) 시위를 지원했으며, 여기에 국정원 예산 10억여원을 지급해 '국고 손실'을 했다는 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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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옥씨는 “국정원이 외곽팀을 운용한 것은 사이버상에서 절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적폐 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으로 구성된 테스크포스팀이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열었습니다. 메인 서버에는 국정원의 모든 정보 활동 문건이 들어있습니다. 과거 어느 정권도 전(前) 정권에 대한 보복을 이렇게 한 적은 없습니다. 언론이나 검찰에 국정원의 기밀 문건과 보고서를 통째로 넘기는 식의 여론몰이를 하진 않았습니다."

―국정원 측에서는 내부 감찰을 위해 메인 서버를 들여다보는 것은 국정원법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위법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나름대로 근거를 만들어놓았겠지만 국정원 역량이 모두 노출됩니다. 좌파 성향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국정원 개혁위원장입니다. 외부 민간위원들도 기밀 문건을 돌려보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취사 선택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검찰에 불러가 조사받을 때 그런 문건들이 통째로 검사 책상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문건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느냐'고 하니까, 담당 검사도 공감했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기밀 문건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국정원장에게 한 업무보고, 심리전 추진 계획, 대북 및 해외 보고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서 등입니다."

―불법 정치 개입 문건이 어떻게 국가 기밀에 속할 수 있습니까? 사법 처리를 위한 증거물로서 검찰에 넘기는 게 문제가 됩니까?

"국정원 직원의 비리는 보안 유지를 위해 대부분 자체 감사를 해왔습니다. 불법 행위가 포함됐다고 해도 공개하다 보면 국가 기밀이 노출됩니다. 현 정권에서는 '불법 행위'로 해석하지만 그 자체가 국정원의 고유 기능인 것도 있습니다. '국정원 적폐 청산'이 진짜 목적이라면, 보수 정권 이전(以前)의 정권에서 행해진 것들은 왜 열어보지 않습니까."

―당신은 노무현 정부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 후계자인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대상'이 된 게 아이러니합니다. 2007년 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草案)을 작성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밑에서 모든 합의를 이뤄놓고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남북 정상이 발표할 합의문도 미리 실무 협상에서 만들어놓습니다. 우리 측 합의문의 초안 작업을 맡았던 저는 합의문 1조(條)에 '북핵 문제 해결'을 명기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북한은 핵(核) 문제는 미국과의 협상 안건이라고 봅니다. 우리와는 핵 문제에 대해 언급 자체를 안 하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합의문에 '북핵 문제 해결'을 명기하는 것에 대해 우리 정부 내부에서 반대했습니다. 노 대통령도 그 합의문을 보고는 '나보고 평양 가서 싸우고 돌아오라는 거냐'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그 조항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북한은 이미 1차 핵실험(2006년)을 강행했습니다. 그 전에 1992년 남북한 총리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2005년 제네바 미·북 협상에서 북핵 포기 약속을 받아낸 '9·19 공동성명'이 있었지만, 김정일이 직접 합의 서명한 문건이 아니어서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북핵 문제 해결'을 명기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던 겁니다."

평양 백화원 초대소 앞에서.
평양 백화원 초대소 앞에서.
―막후 접촉한 북한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북측은 '장군님(김정일)께 보고를 못하겠다. 북핵 조항을 삭제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약속하지 않으면 남북이 손잡을 수가 있느냐. 정상회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반박했고요."

―그 조항은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청와대 초안과 조율되고, 정상회담 직전 진행됐던 남북 지휘부 간 협상을 거치면서 합의문 4조에 일부 반영됐습니다. 표현도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9·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공동 노력하기로 하였다'라며 다소 모호해졌지요."

―당시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은 뒷날 논란이 됐지요.

"합의문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합의문 초안에서 NLL 문제는 절대로 협상해선 안 되며, 국가보안법이나 우리의 법과 제도를 건드리는 일체의 내용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분명한 기준을 정했습니다."

그는 2007년 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 인사에서 '심리전 단장'으로 승진 발령이 났다. 그는 2010년 말까지 3년간 그 직책을 맡았다.

―심리전단장 재직 시 역할이 지금 와서 문제가 됐는데요.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은 심리전 기능이 있습니다. 북한의 변화와 우리 주도의 통일을 이뤄가는 데 심리전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심리전 총국'이었습니다. 하지만 햇볕정책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절반 정도의 규모로 축소됐습니다."

―우선 노무현 정부에서 심리전단장으로 서 어떤 일을 했습니까?

"노 정부에서 3개월가량 했습니다. 그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관련 저서와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제작 배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홍보는 심리전단의 통상적인 업무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습니다. 대통령 이미지는 국가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 심리전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사이버상 댓글 활동도 심리전단의 통상 업무인가요?

"사이버팀은 그전에는 없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 새로 생겼습니다. 제가 맡고 보니 사이버상 대북 정책 홍보와 한·미 FTA관련 홍보, 비판세력 대응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그런 활동이 국내 정치 개입으로 문제가 됐는데요.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괴담과 유언비어에서 촉발된 광우병 촛불시위로 정권 퇴진 압박에 직면했습니다. 정국 혼란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 참모진이 거의 모두 사퇴하면서 '국정원이 정국 악화 사태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 직후 김성호 원장이 교체되고 2009년 3월 원세훈 원장이 부임한 겁니다. 그는 종북 세력 척결, 보수 우호 세력 육성, 국정 홍보를 국정원 3대 업무로 내걸었습니다."

―국정원이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에 치중했다는 말로 들리는 군요.

"이 모든 게 북한이 있는 특수 상황 때문입니다. 광우병 파동과 천안함 폭침 사건 때 북한의 정찰총국과 통일전선부는 우리 국내 네티즌의 ID를 도용해 괴담과 유언비어를 확산시켰습니다. 당시 대남방송을 들어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정부를 흔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북한의 이런 사이버 심리전에 대응하고 국내 종북 세력과의 연계를 차단시키는 것은 국정원의 기본 업무입니다. 경계선이 애매해 자칫 국내 정치 개입 소지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댓글 외곽팀을 처음 만든 것은 맞습니까?

"원세훈 원장은 사이버를 주도하지 못하면 정국 안정과 국가 체제 유지도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사이버상에서 보수 세력의 절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외곽팀을 운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유언비어와 선동글에 대해 반박이나 토론 댓글을 달아 여론 조작을 방어하는 겁니다. 외부 협조자를 고용하고 우호 세력을 만드는 것은 정보부 고유의 업무입니다."

―보수 단체의 관제(官製) 데모와 시국 광고를 지원했다는 혐의가 있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연평도 피격 직후 송영길 인천시장과 박지원 의원이 북한을 옹호하고 정부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국민이 얼마나 분노했을 때입니까. 우파 단체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시국 광고를 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이를 지원한 것을 '정치 관여'라고 했습니다."

―이런 외곽팀과 보수단체에 국정원 예산 10억원을 사용해 '국고손실죄'라는 죄목이 붙었더군요.

"좌파 정권에서 남북화해를 내세우는 좌파 단체를 지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저는 국가예산을 단 1원도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부당하게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원세훈 원장 시절 여야 정치인에 관한 지라시 성격의 유언비어를 확산시키라는 등 명백한 정치 관여 지시는 내 선에서 거의 모두 묵살했습니다. 이 때문에 '심리전단은 뭘 하고 있느냐'며 소극적이라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2010년 말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면직됐다. 그 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냈다.

"젊은 날 '통일을 위해 이 한몸 바 치겠다'라는 열정으로 국정원에 들어왔고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는데…. 우파 정권에서는 '좌파 햇볕론자'로 몰렸고, 이제 좌파 정권에서는 '우파 적폐세력'으로 지목돼 사법 처리의 신세가 됐습니다. 한 공직자의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난도질당했습니다. 역사의 죄인처럼 됐다는 좌절감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구속수감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2/20171022016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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