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위신 세우려 험한 말… 中은 사드 핑계 한국 길들이기
日은 자국 군사화에 이용하는데 文 정부 대북 노선은 중구난방
이 사람 저 사람 저마다 딴소리… 혼선 탓에 나라 안보 무너진다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북핵 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우군(友軍)이 없다. 중국은 사드를 핑계로 '한국 길들이기'로 돌아섰고 러시아는 '남북 등거리'를 유지하며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긴장하는 척하면서 이 사태를 자국 군사화에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보란 듯이 한국 섬멸을 내세우며 한·미 이간에 바쁘다. 온갖 비난과 비판을 무릅쓰고 '대화'에 집착하는 문재인 정권을 더욱 비참하고 비굴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믿었던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는 자기들 보기에 조막만 한(?)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을 당하는 것에 위신이 깎이고 굴욕감을 참지 못해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지만 정작 한국의 안보를 위해 저러는 것 같지 않다. 미국이 진정 우리를 동맹국이고 지킬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면 이 시점에서 FTA 재협상으로 뒷통수를 때릴 수가 없다. 적어도 시기적으로 그렇다. 말이라도 한국 국민을 안심시키고 안보에 관심을 보이며 자기 정부를 우리 쪽으로 다가서게 만드는 제스처를 썼어야 한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에만 관심이 있고 동북아에서는 일본만 잘 건사하면 되고 중국과 화평을 유지하면 되고 북한이 분탕질을 치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한국의 미래는 그에 따른 부산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제·외교·군사에 경험이 없는 그의 초보적 수준의 지정학(地政學) 개론이랄까.

여기에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北) 유화론과 안보 관련 갈팡질팡 중구난방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북핵 위기가 저렇게 심각한 마당에 자기들(한국)이 나서서 미국을 끌어들이고 일본의 협조를 구하며 대(對)중국·러시아 외교에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대화하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우리 땅에서 전쟁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북한에 돈 보내겠다'며 마치 미국이 전쟁 못해 안달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을 보고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나마 미국의 전문가 집단, 직업 관료, 군사 전문가들이 트럼프를 말리지 않는다면 트럼프는 아마도 북한을 때리거나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에서 손 떼는 양극단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국민은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의 대북노선이 어떤 것인지 헷갈린다. 북한의 핵 위협을 정면돌파 하려는 것인지, 북한이 대화에 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 기회에 북핵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을 철수시켜 동맹을 파기하고 미·북 간의 관계 개선을 도모해 남북 공존으로 가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 사람 이 소리 하고 저 사람 저 소리 하고, 대통령까지 어제는 이 말 했다가 북 미사일 실험이 고조되면 다른 말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문 정권 사람들이 안보 갖고 장난을 치는 느낌까지 받는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대통령이 말 못하는 것을 자기가 대신한다며 자기가 마치 '섀도 대통령'인 양 행세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핵 인정, 한·미 군사훈련 반대, 한·미 동맹파기 불사(不辭) 등 북한 대변자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노영민 주중대사는 "롯데 퇴출은 사드 때문 아니다"라며 우리 주중대사인지, 중국의 주한대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전술핵 배치 여부를 둘러싼 송영무 국방장관과 청와대 핵심 인사 간의 대립-견책-사과의 과정은 콩가루 집안의 인상마저 준다. 강경화 외무장관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감에 미국 B-1B의 NLL 비행 때 '지나치게 자극적' 운운한 겁먹은 태도도 그렇고 거기에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등까지 가세한 문 정부의 안보사령탑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고 좋게 말해 백화제방이다. 어찌 보면 저들끼리 서로 짜고서 역할 분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교·국방 등 안보 분야에서 지나친 중구난방과 혼선은 특히 그것이 밖에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위험하며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귀결되면 나라의 안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허심탄회한 토론을 거친 후 일관된 안보정책을 만들어 그것을 대외적으로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딴소리하면 국민도 불안하고 주변국도 헷갈리고 특히 동맹국은 우리를 신뢰할 수 없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무장관은 '대화'를 얘기하고 대통령은 '시기상조'로 반박하고, 참모들은 군사옵션 얘기하고 대통령은 '폭풍 전야'를 거론하는 상황이 벌어져 마치 수수께끼 게임하는 것 같다.

이제 북핵 위기에 대처하는 옵션은 다 나온 셈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를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결 정하고 그 결과를 역사 앞에 책임질 일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로 나온다면 우리는 북한의 전환을 적극 환영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싸우자고 한다면 우리도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그 경우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면목을 바로 세우는 길이며 70년 남북 고착 상태를 깨는 길이다. 이제 안보 게임은 그만하고 애걸복걸도 그만하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9/2017100901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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