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분별과 감수성'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가끔 누구에게 어떤 선택을 권하면서 "실패하면 내가 책임진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남의 앞날을 좌우하는 사안에 '책임을 지겠다'는 장담은 사실상 무책임의 극치이다.

요즈음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하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중매결혼이 많았는데 당시는 결혼의 실패는 여성에게는 파멸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중매를 하면서 '이 신랑감은 내가 보증한다'고 큰소리치는 중매쟁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결혼을 성사시킨 신랑감이 폭력 남편, 또는 결혼 사기범이라 해도 중매쟁이가 '책임'을 질 방도는 없었다.

김정일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정상회담을 얻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절대로 핵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개발한다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그 돈으로 개발한 핵무기가 지금 5500만 남한 국민의 목숨을 겨누고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책임을 질 수 없는 곳에 있다.

얼마 전에 박원순 시장이 한 서울시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데 대해서 "제 책임입니다"고 말했다. "내 책임은 아니다"는 것보다야 몇 배 낫지만 그는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일까? 책임지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 출범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발표하는 주요 정책들이 대체로 우리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우리 경제를 치명적으로 위축시킬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의 문제점이 거듭거듭 상세히 지적되었건만 문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정부의 정책으로 안보가 파괴되고, 경제가 타격을 입는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조차도 없다. 그는 대통령은 정책 수립과 시행을 지휘하는 사람이고 결과는 국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 '분별과 감수성'의 남 주인공 에드 워드는 젊어서 성급한 판단으로 약혼한 루시라는 여성의 천박하고 이기적인 성품을 감지하고 낙망하지만 신사로서 약속을 어길 수가 없어서 죽기보다 싫은 결혼을 하려고 한다. 영국 '신사' 노릇이 어려운 것은 신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언약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의 권리에만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대통령 노릇이 신사 노릇보다 쉽지 않은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9/20171009017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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