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이 미 본토 공격 가능하면 조약 없어도 상호 불가침 효과
미는 中 견제에 북한 활용하고, 북은 南 적화하려 미 도울 수도
核 동결과 미군 철수 맞바꾸면 우리는 인질 되고 日은 핵무장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군비 통제의 여러 방법 중 하나로 '현 상황'에서 일단 군비 증강을 멈춘 후, 한숨 돌리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동결(freeze)'이 있다. '일단정지'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동결은 북핵 문제를 그대로 놔둘 경우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발상이다. 하지만 일단 동결 후 평화적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근원'이 해결되지 않는 한 동결은 시간을 지연시킬 뿐이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근원은 한반도 전체를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대전략과 한·미 동맹이 정면충돌한다는 데 있다. 북한은 한·미 동맹을 파탄 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파탄 낼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매진했다. 이제 성공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다른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국 도시가 핵 공격 받는 것을 감내할 나라는 없다. 북한 핵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되는 날, 북한은 비록 무언(無言)일지라도 그토록 염원했던 미국과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상황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8·15 경축사에서 북한에 핵 동결을 제의했다.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을 현 상태에서 중지하라는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다면, 북한은 한·미 동맹을 무력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핵 동결을 빌미로 미국에 역제안을 할 수 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핵 동결을 쓸 만한 옵션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핵 개발 동결의 대가로 미국에 한·미 연합훈련 중지, 더 나아가 주한 미군 철수 즉 한·미 동맹의 점진적인 해체를 요구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니키 헤일리(오른쪽)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조태열 한국 대사가 5월16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헤일리 대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멈추면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AP 연합뉴스
비록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지를 교환하자는 이야기가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인들이 우려하는 당장의 문제는 미국 본토에 북한의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며 이는 북핵을 동결해야 가능하다. 더 노골적인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논리를 따른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에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그럴 능력을 갖추더라도 결코 미국을 핵 공격 하지 않는다. 왜 자살하겠는가?

미국을 공격할 북한의 핵무기는 궁극적으로 대남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도 북한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아주 유용한 나라로 북한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사임한, 트럼프의 전략가 배넌이 며칠 전 한 말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읽어야 한다. 그는 북핵을 군사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중국을 이기는 것이 미국 국가 대전략의 관건이라고 했다. 북한은 미국 편에 서서 미국이 중국을 이기도록 도움을 주는 대가로 북이 주도하는 통일을 요구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만 볼 때 북한은 미국 편이 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이 같은 상황은 생각하기 두렵지만 이미 베트남에서 시도되었고,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장기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북핵을 동결하자는 제안은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북한이 이미 대한민국을 공격하기에는 충분한 핵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의 북핵 동결은 우리 스스로 인질이 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완벽하다면 북한에 대한 핵 동결 제안은 유용할 수 있지만, 지금 의 북핵 동결은 한·미 동맹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핵 동결 제안은 현 상황에서 북한뿐 아니라 미국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북핵의 현 상태 동결은 일본을 북한의 핵 공격 대상이 되도록 방치하는 꼴인데 일본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일본은 이를 하늘이 준 핵무장 기회로 활용할 터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도 일본의 핵무장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0/20170820017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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