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며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말 자체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김정은은 바보가 아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 한반도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고지가 코앞인데 여기서 멈출 까닭도 없다. 이제는 미국의 전직 고위 관계자들도 협상에 의한 북핵 폐기를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태영호 전 북한 공사가 일찌감치 '북은 결코 자기 뜻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대화하고 협상해보되 결국 안 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전쟁 반대'와 '평화적 해결'은 백번 옳은 말이지만 그것으로 북핵 폐기가 안 될 경우에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김정은의 핵 노예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대화로 안 될 때의 선택'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북핵이 가상의 위협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됐다. 그래서 국민은 평화적 북핵 폐기가 안 될 경우를 예감하는 것이고 대통령으로부터 그때 대한민국의 생존 방법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 안위 보장' '핵 포기하면 경협' '군사회담' '북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등 지난달 베를린에서 했던 대북 제안을 그대로 반복했다. 북은 정치·안보 문제를 한국과 논의할 생각이 없다. 북이 남북 대화에 나오는 것은 한·미를 교란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북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거나 핵실험을 중단했던 시기는 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라고 했다. 그렇게 북에 속아서 지금 이 지경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미 무역대표부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를 명령했다. 북핵 해결에 제대로 나서라는 뜻이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무역 보복을 예고했다. 어제 서울 도심에서는 온갖 좌파·시민 단체들이 집결해 반미(反美)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주장했다. 북으로서는 미·중이 갈라서고 남한에서 반미 움직임이 커지는 것을 유리한 정세 조성으로 판단할 것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 조치를 막는 확실한 둑이 돼 준다면 남한을 완전한 핵 인질로 잡았다고 자신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 때문에 대북 군사 조치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면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북핵·ICBM 동결과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맞바꾸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북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등극한다. 지금 상태로는 그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건너뛸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 된다. 문 대통령은 그때 우리가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를 밝혀달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5/20170815018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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