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이 9일 유례없는 용어로 대립했다. 미 정보기관이 '북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발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북은) 지금까지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내에서도 '북이 불바다 협박을 한다고 미국 대통령까지 따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 정부가 현 상황을 인식하는 정도가 이 정도로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자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호'로 괌 주변을 포위 사격할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북이 미국의 구체적 지점까지 지정해 공격을 예고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이 공방은 앞으로 미·북 간에 벌어질 일의 예고편일 뿐이다.

당장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북이 레드 라인(금지선)을 넘어버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수십 년 안보 불감증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는 또 '설마' 하겠지만 한반도 정세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서 있다. 북한이 2006년 첫 핵실험을 한 이후 11년이 지났다. 보통 핵탄두 소형화에는 수년 정도가 걸린다. 북도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대기권에 재진입시키는 기술 정도다. 미·일은 내년까지는 북이 이 기술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앙이 눈앞에 와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우리 정부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이 ICBM을 발사해도 한·미 정상은 미·일 정상 통화 6일 뒤에 통화하는 실정이다. 통화가 돼도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진지한 안보 대화를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 옆에서 "화염" "사격"이 오가는데 '코리아 패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미·북 협상이든 전쟁이든 한국 정부가 배제된 채 국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당장은 북한의 군사 동향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한·미를 최소한 미·일 수준의 공조 체제로 복원시켜야 한다. 미국의 어떤 대북 조치도 사전에 통보받고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같아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 것이 사실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북핵 폐기를 조건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하는 미·중 담판론까지 제기한 상황에서 미국 내 움직임을 제대로 모르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우리가 역할을 할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것은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개탄만 하고 있기에는 나라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대통령은 국가 보위의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햇볕 논리부터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오로지 국익과 안보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만 보기 바란다. 국제 관계 등을 감안해 우리 스스로 금기시하던 모든 수단도 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상(非常)한 상황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9/20170809034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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