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개발 능력 없다"는 '뻥', "체제 보장하면 핵 폐기"는 '꽝'
"돈 주면 대화 나설 것"은 '썰'… 거짓 메시지 3종 세트 드러나
대화 안되는 건 南 냉전세력 탓? 미신에 혹해 우리는 失機했다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북한 핵과 대륙간탄도탄(ICBM)은 우리에게 한 가지 의미 있는 부수 효과를 불러왔다. 수십년간 우리 사회에 횡행하던 거짓 메시지, 미신 3종 세트가 부도를 낸 게 그것이다. "북은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이다" "북이 핵을 가져도 대화로 풀 수 있다" "대화가 안 되면 그건 남한 수구 보수의 '반(反)대화' 때문이다"라고 하던 '뻥'이 확실하게 '뻥'으로 입증됐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무렵 '진보' 정치 리더들은 이렇게 말했다. "북(北)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우리의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면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다." "북한 핵은 방어용이라는 말에 일리 있다."

북(北)은 그러나 오늘 시점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알래스카, 뉴욕을 때릴 수 있는 핵탄두-ICBM 실험에 성공했다. 북은 미국으로부터 아직 체제 안전을 보장받진 못했다. 그러나 미·북 평화협상이 온 대도 김정은은 핵 동결(凍結)까지는 몰라도 핵 폐기는 죽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진보' 정치 리더들의 예언은 그래서 말짱 '꽝'이었다. 왜 '꽝'이 됐나?

그보다 앞선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만 잘하고 비위만 잘 맞춰주고, 돈맛만 잘 들여 주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북은 언젠가는 우리 '햇볕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줄 것이다"는 낙관론이 일세를 풍미했다. 이 대화 만능-선심(善心) 만능은 '진보'뿐 아니라 실적 쌓기에 급급한 대통령들, 재벌 CEO들, 회담 부처 관료들, 해외 대학에서 높은 공부 한 먹물들이 즐겨 푼 '썰'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도 아래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의 2차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29일 보도했다. /뉴시스
북은 그러나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우릴 햇볕으로 바꿔놓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모기장 치고 너희들 돈만 쏙 빼 먹겠다"는 게 북의 '한 수 위'였다. 그래서 김태산 전(前)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은 이렇게 썼다. "북한? 아무리 돈 보따리 들고 찾아가 주절거려 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제발 어린애한테 비굴하게 징징거리며 달라붙지 말라." 김정은이 미국과만 직거래하겠다는데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북한과 대화할 시간은 지났다"고 선언하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대화 운전석'에 연연해 한다. 대화 미신은 그러나 김정은의 '화성-14' 한 방으로 훅 꺼졌다고 봐야 한다. 일단은.

대화 만능-선심 만능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인즉, 보편적 인성론(人性論)이란 것이다. 사람 마음은 다 같다는 것이다.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길 바란다. 북한 권력층도 사람이다. 고로 북한도 언젠간 우리의 '잘 먹고 잘 살기' 프로젝트에 호응해 올 것이다. 북한 개발 사업이 일어나고 북한 경제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전쟁은 멀리 가고 평화가 올 것이다"란 경제결정론이다. 그러나 이건 우리가 경제주의적인 그만큼 북한은 오히려 지독하게 관념적이고 종교적(사이비)이란 사실을 모른 소리다. 합작 사업으로 북한을 서서히 시장경제로 접속시키자는 것은 결국 평양 권력더러 서서히 죽으라는 소린데 그게 되었겠는가?

남북 대화가 그렇게 해서 잘 안 되자 세 번째 미신이 출현했다. 남북 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건 남한 냉전 세력의 대결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 냉전 세력이 궤멸한 지금은 왜 북이 남쪽 군사회담 제의를 묵살하나? 이야말로 대화 두절이 우리 아닌 북한 탓이라는 팩트 아닌가? 북에 있어 대화란 결국 북의 필요에 따라, 북이 정한 시간에, 북이 의도한 대로 '북은 닫은 채 남(南)만 여는' 일방통행을 의미했을 뿐이다.

북의 반(反)인륜 폭정은 더군다나 닫힌 공간에서나 비밀리에 자행할 수 있다. 남북 대화는 그 닫힌 공간에 작은 창이라도 내자는 것이다. 김정일-김정은은 그걸 할 수 없다. 한 뼘 창틈으로라도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를 알면 알수록 그들 영혼에 대한 주석궁 미라의 장악력은 떨어질 것이다. 이 위험 부담을 그들이 왜 떠안으려 했겠는가? '그들의 대화'는 그래서 처음부터 돈 뜯기-시간 벌기-남남 갈등 쇼에 불과했다.

김정은은 이젠 쇼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고압적이다. 미국이 끝까지 강하게 나갈지, 미·북 협상으로 돌아설지는 알 수 없다. 후자면 우리 안위가 우리 어깨 넘어 거래될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우리는 미신에 혹해 헛보고 헛짚고 헛꿈 꾼 게 너무 길었다. 힘에는 힘으로, 대칭(對稱)에는 대칭으로, 비(非)대칭에는 비대칭으로 일관했어야 했다. 우리는 실기(失機)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7/2017080703026.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