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혜경궁 '한중록'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선진국이라고 '갑질'이 없지는 않겠지만 프랜차이즈 본사가 그토록 노골적으로, 그토록 비열하게 가맹점을 착취하고 골탕 먹이는 나라는 국민소득 액수에 관계없이 후진국이다. 시민의 발이며 국가 경제의 핏줄인 시내버스 기사들이 과로와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매일 지옥 문턱을 드나들고, 대형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 무한정 방치되는 사회 역시 변명할 여지 없이 후진국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후진국민 DNA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비관이 일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공적인 분야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원칙이 존중되면 이런 음지에 서식하는 비리는 신속히 도태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비합리적 독단을 앞장서서 실행하고 있다.

새 정부는 어마어마한 국고를 쏟아부어야 하는 경제정책을 하나도 아니고 여럿, 국민과 합의하는 과정 없이 직권으로 시행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신설 등으로 일부 국민이 일시적 혜택을 볼 수는 있지만 장기적 효과는 매우 불확실하고 해로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묵살된다.

청와대의 갑작스러운 원자력발전소 시공 중단 지시는 국민에게는 날벼락이다. 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장 동력 확보가 걸린, 그리고 2조6000억 내지 12조원 손실이 따르는 건설 전면 중단 여부를 비전문가들로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게 한다니 이 나라는 아마추어들의 낙원인가?

발등의 불이 된 북한 핵폭탄에서 국민을 지켜줄 요격미사일 설치는 반드시 한다면서 일 년을 미루고, 국민을 몰살하겠다는 북한에 체제를 보장해 줄 테니 대화를 하자고 하고, 에너지 자립을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로부터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를 설치해 천연가스를 받겠다는 것은 남북 화해만 할 수 있다면 남한 국민을 제물로 바쳐도 좋다는 생각이 아닐까?

한 달 동안 각계 인사들과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도 반대 한 인사들을 기어이 장관에 임명하고, 시위대 10여 명에게 막혀서 경찰력 1500명이 퇴각하는 나라가 국가 안위와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는 나라인가?

조선조 영조는 평생 비단 옷을 입기 싫어하고 늘 소식(素食)을 즐긴 애민 군주였으나 자기만 옳다는 확신과 고집 때문에 단 하나뿐인 귀한 아들을 정신병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초기 노이로제 상태에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7/2017071702962.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