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원하는 평화협정은 핵 보유 인정이 기본 전제
"핵 폐기와 교환하자"는 협상안 수용할 생각 없어
비핵화 요구 외면당했을 때 우리 뜻 관철 방안 마련해야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소재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제시한 대북 평화 구상은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내리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한국이 흡수 통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하루 전에 일어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무모하고 국제사회의 응징을 자초했다'는 표현이 들어갔지만 연설의 방점은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여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같은 6일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문 대통령의 '사드 보복' 철회 요청에 대답 대신 사드에 관한 중국의 '정당한 우려'를 한국이 중시하기 바란다면서 중국이 추가적인 대북 제재에 반대하며 북한이 여전히 중국의 혈맹(血盟)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다음 날인 7일 한국과 미국의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잇따라 양자회담을 갖고 북한에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재 없는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질세라 한·미·일 3국 정상의 6일 만찬 회동에서는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주 독일 G20 정상회의서 수행한 취임 초 해외 순방 제2라운드는 한국이 처한 외교적 입지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확인해 주었다. 7일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G20 참가 정상 내외 초청 음악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손을 끌어 잡아 친밀감을 표시하고 시진핑 주석이 이를 봤는지 뒤돌아 확인하는 장면은 '북한 문제'를 전혀 다르게 보는 두 나라가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각)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의 문화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왼손을 뻗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두드리면서 친분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악수를 마친 뒤 바로 뒷줄에 서 있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흘긋 돌아봐 "한·미 동맹을 과시하며 시 주석을 견제하려 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가 독일에서 천명한 대북 구상은 북한이 결국 올바른 길로 들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한반도에 평화와 경제 협력이 정착되는 이상적 시나리오를 담은 플랜 A다. 가장 "혹독한(severe)" 조치를 모색하는 미 트럼프 행정부조차 북한에 "대화의 문은 늘 열려 있다"고 확인한다. 플랜 A는 실현되기만 하면 제일 좋지만 중국이 협조하지 않고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작되더라도 마음이 앞서고 잘못 가동되면 안 하느니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흡수 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북한을 달래지만, 정작 대한민국 체제를 흡수하여 연방 사회주의 통일 국가를 만들겠다고 매진하는 쪽은 북한이다. 북한 정권이 미국에 체결하자고 줄곧 주장하는 평화협정은 자신의 핵 지위를 인정받고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거두어들이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면 한국과의 군사 공조를 중단하고 주한 미군도 철수해야 한다. 반면 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한 평화협정은 튼튼한 한·미 동맹과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전제로 하고 있어 북한이 관심을 둘 리가 만무하다.

북한이 남북 합의문 중에서 유독 2000년의 6·15선언과 2007년의 10·4 합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남한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아무런 단서 없이 대규모 경제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북한의 먼 친척이 나와 거액의 달러를 받아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애걸하는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가 아무리 반복된들 남북 민족 화해의 길은 요원하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단한들 북한이 대한민국을 흔들어 분열시키고 미국과 멀어지게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플랜 A만 상정해서 남북 관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한다는 것은 북한이 응하지 않는 한 꽉 막힌 길을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플랜 B를 구상하고 가동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해 오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대비부터 시작하여 북한 사회의 위아래 전반을 변화시키는 방안 등 북한 정권의 동의 없이도 추진 가능한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여해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 내에 급변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래도 인위적인 통일 계획이 없다고 두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플랜 A에만 집착했던 햇볕정책 10년은 한반도의 '선언적 평화'에 취해 북한 정권이 고집하는 길을 더 빨리 가도록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과거 10년 전의 상황과 사뭇 다른 한반도 정세를 접하면서 학습하고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북한 정권의 실체에 대한 냉철한 인식만이 나라의 안위(安危)를 지켜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9/201707090198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